폐허와 평면 검정에 드러나는 색
“작업을 하는 것, 그것이 나의 언어이다. 나의 작업은 높음 낮음으로 형성되어가는 철저한 평면의 추구이다. 내 작업의 과정은 캐어내고 채집하는 것이다.”<정상화展,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작가영상>
정상화(1932-)작가는 1957년 서울대 미대 졸업 후 전후(戰後) 어두운 사회적 분위기를 어떻게 화폭에 담을 수 있을지 주목한다. 강렬한 몸짓으로 역동적인 화면을 구사하고, 물감을 던지고 뭉개버림으로써 전후1세대 청년 작가로서의 뜨거운 에너지를 표출하는데 1953~68년까지 추상실험시기이다.
“전쟁을 겪은 우리에게 ‘폐허‘라는 것, 폭격을 맞아서 전부 허물어진 상황, 요철이 올라왔던 상황이 전부 다 가라않아 없어져 버린 상황, 완전히 평면화가 돼 버린 상황, 이런 것들이 저에게 정신적으로 충격이 컸어요. 있던 게 없어진 것에 대한 허탈감, 요철이 올라왔던 상황이 전부 다 가라않아 없어져 버린 상황, 색이 없고 전부 검정으로 변해진 것. 속에 있는 게 드러나고요.<작가영상 중>”
“인천사범학교 교사시절 남대문에 가서 미군의 천막캔버스를 제대로 사려면 커다란 야외 천막을 사서 끌고 와서 나무를 조립해서 큰 캔버스로 활용했어요. 그냥 캔버스가 아니라 바닥에다가 깔아놓고 갖다 부어버려요. 막대기로 긋고 발로 밀기도 하고 별 장난을 다 했어요.<작가영상 중>”
그가 고베로 이주하여 활동하던 시기는 1969~77년까지다. 단색조추상으로의 전환으로 가장 혁신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던 시기로 8년이라는 기간에 앵포르멜 화풍에서 벗어나 단색조 회화로의 변모가 나타났다. 1973년부터는 백색위주의 단색조회화가 다량 제작되고 격자형구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77~92년까지는 파리로 이주하여 작업했던 시기로 격자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목하게 된다. 물감을 캔버스에 바로 칠하는 회화적 전통에서 벗어나 고령토를 뜯어내고 빈 곳을 물감으로 채우는 노동집약적인 방식 ‘뜯어내기와 메우기’기법이 완성도를 더해간다.
“처음 파리에 간 동기는 파리비엔날레가 시작되고, 도착하자마자 매일같이 파리현대미술관, 루브르박물관을 다리가 아플 정도로 다니고, 저는 외국생활을 하면서 붓을 한 번도 놓은 적은 없어요. 일본에 있을 때도 매일 그림만 그리고요.<작가영상 중>”
◇백색단색조회화
1992년 정상화 화백은 20여 년이 넘는 해외 생활을 마치고 영구 귀국한다. 경기도 여주에 작업실을 마련한 그는 백색단색조회화를 제작하며 작품의 완숙미를 극대화해 나갔다. 수개월에서 많게는 1년의 시간이 걸리는 지난한 노동의 행위가 집약되어 있는데 자신의 작업을 ‘과정’으로 정의 내린다. 지금까지 조수를 한 번도 둔 적이 없이 제작 모든 과정을 온전히 본인 스스로 해나간다.
“점점 색을 억제하다 보니 백색으로 돌아가게 된 거예요. ‘평면 속 뒤’라는 것을 생각안 할 수 없는 거거든요. 뒤가 있다면 그 뒤에 또 뒤가 있다고 생각해요.<작가영상 중>”
△글=권동철, 인사이트코리아 8월호,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