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우주야말로 새 ‘비전’ 여는 지향점- 박동진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5. 14. 00:49

 

COSMOS-순례 90.9×72.7cm 혼합재료

 

 

 

‘COSMOS-거닐다연작현실·상상속 평온의 감성·사유 

 

 

 

초록의 잎이 가을로 물든다. 아주 가벼이 흔들리는 실바람. 대지를 향해 살며시 기대는 저녁나절의 나른한 가지. 숲 향기 낙엽을 밟으며 걷는다. 한 걸음 지나면 또 한 그루. 붉은 노을을 다 껴안은 호수를 지나 풍만한 엉덩이의 탄력으로 부지런히 걷는 저 말()은 주인을 만날까.

 

낮은 나무 갈색 잎 위로 문득 상념이 흐른다. 천천히 걷다 멈춘다. 산허리 낡은 통나무 의자에 누군가 두고 간 오래 된 작은 목마. 문득 걸음을 멈추고 몸을 뉜다.

 

스르르 감겨오는 눈. 억겁의 세월 비추는 햇빛과 바람과 비와 천둥과 꽃향기의 기록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가식 없는 절대적 세계로의 일탈을 꿈꾸었던 시간. 자신을 헌신하고 존중하고 공헌하고 싶었던.

 

순수는 자율성과 개성잉태의 모태 

그러나 지금은, 광야를 달리던 벗들의 가쁜 호흡을 진정시킨 부러진 말뚝의 흔적만이 간신히 남아 있다. 한때 대담한 움직임을 지탱했던 발바닥이 후끈 거린다.

 

 

 

 

COSMOS-풍경에 물들다 72×53cm 혼합재료

 

 

초지를 찾는 선두에서 길잡이가 되었던 유목(遊牧)의 세월. 그 전성의 시절에 초목의 대지로 별무리는 푸른빛으로 쏟아졌었지. ()은 독백했다.

내 가슴에 풀잎 냄새만 가득 안기고 왜 돌아오지 않으셨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던 네 다리의 선물로 준 편자. 기병문화를 이끌었고 발굽은 생명처럼 지켜주었었지. 그리고 세상에서 형상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동물이라는 칭송은 여전히 회자(膾炙)되는가.

 

그러나 이제 그도 잘 알고 있다. 말 자체의 본성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 그것이 생명력이라는 것을. 본질은 도외시하고 겉모습만 살핀다고 지적받는 오늘의 세태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천천히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이제 그곳엔 새로운 문명이 형성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문명을 어디에 다 적용할 것인가.”

 

그는 나직이 혼자 속삭인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기술 혁신과 사회 변동으로 인해 우정이나 사랑, 공동의식,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이 없어지는 건 아닐까. 미래의 진보가 인간관계를 삭막하고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그러나 이러한 물음에 대해 답할 수 있는 기본요건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공동체에의 소속감과 이해, 인생의 의미에 대한 이해, 그리고 건강한 환경을 설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주는 일련의 합리적인 법칙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그 법칙을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리라.

 

 

 

 

COSMOS-순수 45.5×48cm 혼합재료

 

 

이것이 바로 창조의 문이며 창()인 것이다. 순수는 자율성과 개성을 잉태할 수 있는 모태. 그렇다면 우주야말로 새로운 비전을 여는 지향점이 아니냐!

 

그러면 화면의 말은 어떤 상징인가. “말의 형태와 형식을 통해 이뤄진 또 하나의 절대적 존재로 나아가는 표현의 수단이자 또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고리라고 할 수 있다.” (장준석 미술평론가) 작가도 그의 노트에 내가 거닐며 명상하고 호흡하는 것을 관객도 화면으로 들어와 명상하고 침잠하고 해석되기를 소망한다. 작가와 관객이 말을 통해 내 예술의 공간에서 보여지기를 원했다고 적고 있다.

 

오오, 초원을 달리다 세상을 걷다가 헤지고 떨어진 신발, 편자여! 해맑고 순진무구의 영혼으로 용기를 내 다시 일어서라. 한 점 물감을 찍으면 도드라지는 뾰족함과 명암의 부각. ()을 이룬 화면의 점들이여. 한 먼지가 될 수도 있고 더 튼튼한 것일 수도 있으니 어디 완벽한 인생이 있느냐, 고통과 기쁨이 공존할 뿐.

 

가을바람이 분다. 땅의 굴곡만큼이나 잎들이 서로 닮아간다. 현실과 나()가 아닌 현실 너머의 진실만이 있을 뿐이던가. 이 가을, 그러니까 자연형의 단순한 상태로의 축약, 우주의 근원적 형태라 할 수 있는 원통을 중심으로 형성된 화면을 당신도 맨발로 순례의 길을 거닐어보시길.

 

 

출처=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