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와 화(畫)는 도가 한 가지이다.1)” 후련하게 쭉쭉 뻗은 큰 높이의 고죽(枯竹) 숲이 강나루 물빛과 노닌다. 바람에 흔들리다 스며들고 잠깐씩 싱그러움의 자태가 우아하게 물살에 스치곤 했다. 형상이 가라앉으며 시적운율이 배어나오는 화폭은 은일(隱逸)한 공간감으로 시간의 경외(敬畏)를 일깨워 명상적 심미성을 돋운다. “내 작업에서 대나무는 시작이자 뿌리이다. 물론 매화, 강물, 비, 달, 비춤(shine) 등 다른 소재들도 표현된다. 대나무가 상징하는 전통적 의미도 좋지만 시원시원한 비주얼이 나는 참 좋다.2)” ◇자연과 인생 의도성과 우연성강물에 비춰지는 대숲 사이, 햇살이 재빠르게 대지로 박힐 때 지웠다 칠하기를 반복한 겹겹자국 위 시간과 기억의 흔적이 동행으로 드리워진다. 그 음영(陰影)의 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