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5천년 이어온 한국의 혼 담아내다-from 화가 이태길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5. 10. 20:17

 

축제 우리들의 행진’ 162×112oil on canvas 2010.

 

 

 

한국인의 축제선과 색으로 독창성 풀어내 

 

 

친구여, 1500년 전 강렬한 원색과 힘찬 선묘(線描)의 섬세하고도 웅장한 회화성과 스케일에 우리 밤새워 나눴던 그 황홀한 흥분을 기억하는가고구려 수산리, 무용총 벽화였었지. 그저 순박하고 우직함이 있을 뿐인 고구려 화가들의 웅혼한 태도와 벽화에 스며있는 호쾌한 기상.

 

그곳에는, 한 시대 같은 고민을 키우면서 한반도의 정신을 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 나와 같은 핏줄의 사람들. 진정 그 발견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정신사가 아니었더냐.

 

 

용맹스러운 기무, 뜨거운 의식 

때는 668년 고구려 멸망 후, 발해 땅 고구려 유민. 늠렬(凜冽)한 겨울저녁. 메마른 먼지만이 회오리처럼 솟구치는 황량한 광야(曠野)에 한 덩어리 된 집단가무의 행진. 가쁜 숨결로 뿜어내는 뿌연 입김, 밤 깊도록 멈춰지지 않는 장중한 울림이여.

 

패망의 망향 한() 풀어내는 고구려 민초들의 여명까지 이어지는 처절하고도 뜨거운 의식이다검은 도복으로 삐쳐 나오는 맨살의 탄탄한 근육들의 부드러운 엉킴. 마주한 어깨와 손과 마음으로 뜨겁게 교감하는 혈류의 맹서.

 

이윽고 생명을 부르는 춤사위, 살아 벌떡이는 고구려인들의 용맹스러운 기무(起舞)가 토해내는 짧고 굵은 함성은 새벽 찬 공기를 갈라 울려 퍼졌다. 같은 마음, 같은 길 가는 사람들이 어우러진 웅장한 대동단결 한마당이었으니.

 

그대들이 만들어 온 5천년 역사, 초록 산하의 대지에 단비가 내리고 씨앗 싹트니 슬픔을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정신의 표상(表象) 아니었더냐!

 

 

 

 

축제 달과 구름과 학’ 162×112oil on canvas 2010.

 

 

 

해방의 시간, 자유의 향유 

8월 한가윗날 밤. 진도 울돌목 그리고 해남의 맑고 밝아 차라리 교교(皎皎)한 달빛은 더욱 찬란하다. 달빛에 젖은 바다는 뼈 속 깊이 파고드는 가을의 빛깔을 풀어놓으라한다위대한 결실 그 부활처럼 희디흰 저고리 우아한 윤곽의 그림자가 물결에 일렁일 때 지아비에 귀의(歸依), 어머니의 길을 가는 숭고한 여인의 가연(佳緣)은 그윽이 넘실댄다.

 

이윽고 달밤 흥에 겨운 이웃 아짐도 손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노래한다. 앞소리를 부르면 뒷소리로 후렴하는 해방의 시간, 해방의 공간. 정중동, 동중동 리듬과 자유의 향유.

 

//뛰어보세 뛰어보세//윽신윽신 뛰어보세/

 

 

 

 

축제 고향이야기’ 116.7×91oil on canvas 2010.

 

 

 

묘사력과 구성력 견고해

한국인의 정체성이 담긴 한국성. 전통 미학사상과 민족적인 정서가 조화를 이루는 조형특징과 형식미를 그의 화면은 담아내고 있다견고한 묘사력과 구성력이 뒷받침되고 있는”(신항섭 평론가) 미감이나 생명감을 인송(仁松) 이태길 화백만의 선과 색의 독창성으로 풀어내 축제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오늘은 어제의 아들이며 내일의 아버지라 했던가. 역사는 희사(喜捨)하는 것. 이 화백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한 시대와 어떻게 관련되는가를 나의 작품세계에서 해법을 모색하거나 찾을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살아있는 고구려의 정신과 강강술래. 인고의 회랑(回廊)을 넘어 한민족 5천년을 이어온 우리들의 축제, 이것이 한국의 혼()이다.

 

 

출처=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