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PARK SUN RANG〕판화가 박선랑|흰 종이에 찍어낸 시와 춤의 협곡(박선랑, 박선랑 작가,Temptation)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6. 11. 09:55

 

Deep Temptation, 39x70cm Aquatint Etching

      

 

    

통증을 어루만지며 지문과 눈물이 섞여 만든 자의식이라는 이름의 순결한 그림자. 나비, 삶의 조각, , 충동, 거짓말, 사랑마저. 수묵화처럼 검은색에 숨겨놓은 저마다의 신화. 그런데, 가슴 아리다. 욕망이란 말보다 먼저 본 그대뒷모습.

 

 

아카시아 향기가 거실로 무리지어 밀려와 지금은 흑백사진으로 걸려있는 명랑한 표정의 초상(肖像)을 가볍게 흔들었다. 소녀였다. 흥겨운 사색을 즐기는 듯 입가에 미소가 보일 듯 말 듯 신비스럽게 눈을 살포시 내려 화면은 호소력 짙은 긴박감이 감돌았다.

 

엔틱 벽시계가 뻐꾸기 소리로 정적을 깨며 오후를 알렸다. 우연인지, 라디오에서 하이든( Franz Joseph Haydn) 교향곡101시계가 흘러 나왔다. 시계바늘처럼 종종 걸음으로 누군가에게 한 발짝 다가가듯, 어느 날 문득 시간의 무게가 엄습해 오는 저녁 비장미 넘치는 장엄한 독백의 외침으로 고요의 공간에 흘렀다.

 

 

 

 

 

     Silence, 38x48cm etching, 2009

 

 

 

봄 구경에 취해 일행을 놓친 붉은 도화(桃花) 몇 잎. 강바람에 실려 허락도 없이 문신처럼 맨살에 내려앉는다. , 진 것이냐 슬픔이 달아오르는 것이런가. 잘록한 허리를 꽃물로 자르르 휘감곤 뿌리내린 채 곤하게 잠이든 손에서 삐져나온 유랑의 빼곡한 기록들.

 

나는, 보았네. 진자주빛깔로 찰랑이는 포도주에 부서지는 달빛 낙원을. 이젠 내 영혼의 기억들을 씻어 내리라. 오오 갈증이여 부디 사라져다오. 허공은 운명 같은 것. 손길 닿지 않는 그곳이 왜 흔적을 남기는지, 말하라!’

 

 

 

 

 

    Remember you Aquatint Etching 60x60cm

 

 

 

冥想에 고요히 맴도는 오래된 기억의 환상곡

천둥이 번쩍이며 이른 아침 한줄기 소낙비가 지나갔다. 날개를 파닥이며 새 한 마리가 숲을 박차고 창공을 날아올랐다. 풍만한 과즙 향을 준비하는 열매들은 침묵 속에도 분주하고 큰 키의 물푸레나무는 기꺼이 새들의 하소연에 둥지를 승낙했다. 그럼으로써 나무는 동심 가득한 궁전처럼 푸른 나뭇잎사이 우아한 선율이 시시때때로 울려 퍼졌던 것이다.

 

꽃잎과 살결, 호소와 동행, 낭만적 리듬의 판타지와 생명력으로 샘솟는 고상한 정신세계의 일체(一體). 더할 나위 없는 균형의 고혹적 몸매는 빛났다. 아아, 그윽한 눈빛 주름진 손등이 어슴푸레 가물거리는 저 라일락 향기를 부드럽게 휘감은 섬광의 관능, 신사여!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356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