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JEONG HYEON SOOK〕 화가 정현숙| 생명과 리듬의 정갈한 어울림(정현숙,Before and After,화가 정현숙,정현숙 작가, 정현숙 교수)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6. 11. 10:08

 

Before and After, 64x62cm Acrylic, crystal and Mother of Pearl on Canvas, 2012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비는 나풀거린다. 꽃 찾아 풍선처럼 날개 짓 부풀리고 재회의 떨림으로 맞는 정오. 곤충도 허물없이 껴안기 위해 아른 아침부터 단장을 하는가보다. 아아, 이 수고로운 예법(禮法)에 감응한 백자(白磁)가 목단꽃향기 피우는 계절이여!

 

 

한 송이 꽃의 순애보가 찰랑이는 향기로 거듭날 때에야 비로써 일생이 된다는 그 말에 수줍게 손 내민 그날. 단언컨대 오직한 분. 벚꽃 차() 권할 때마다 무심히 흘러가는 봄노래가 고요한 마음을 흔들었네.

 

가늘게 떨리며 겨우 한 모금 입술만 적신, 사랑방.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꽃비라 이름 짓던 인연은 가슴 저미는 가락만 남기고 윤회(輪廻)의 세월 속으로 사라져 갔네.

 

 

 

 

 

    70x55cm

 

 

 

산수유 노랗게 피어올라 물결에 하늘거리는 창가. 쇼팽(Chopin)의 탁월한 연습곡, 트리스테스(Tristesse)가 부드러운 황토처럼 슬픔 어루만진다. 달처럼 부드럽게 흙을 문지른 환부엔 따뜻한 온기의 위로가 선물처럼 번졌다. 그때마다 하얗게 피어나는 꽃밭엔 호접몽(胡蝶夢) 장자(莊子)의 나비가 합창을 불렀다.

 

신화를 다룬 오래된 책갈피에서 흑백영화처럼 아련한 기억의 편지 한 장. ‘그래요. 빛을 껴안은 흰색의 성스러운 이데아가 느껴올 거예요. 바로 당신이죠. 진실을 담을 수 있는 영원의 색채, 순수입니다. 오직 하나만을 향하는 그리움, 단 한 번의 절망.’

 

 

 

 

   

    33x41cm

    

    

 

 

영롱한 빛깔로 꽃길을 여는 修行의 길 위에서

갖가지 꽃으로 장엄하게 장식된 부처님의 광대무변한 세계, 화엄(華嚴). 참한 마음으로 꽃길을 내는 저 무심한 흐름. 그 구도(求道)의 길 위에서 만난 하얀 맨살로 빛나는 둥근 항아리의 오래된 순례여. 오늘의 찬란한 햇발이, 달과 별이 강물에 흘러간다. “자아를 긍정해서 자아를 긍정하는 타인을 만나는 선(). 타인을 긍정해서 자아를 비우는 유마경.”<황동규 시집, 꽃의 고요>

 

그리고 또 다시 흘러간다. 강물은, 모든 것은. 새벽 찬 공기 가르며 시린 여울에 흙 묻은 손을 씻는 사내. 안개 흩어지는 강가, 생성과 소멸의 그릇을 깨는 수행(修行)의 파문을 출렁이는데. 오오, 이윽고 찾아든 적요의 시간. 번들거리는 달빛물결위에 비친 그 항아리를 처음으로 빚은 도공(陶工)은 누구인가!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3429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