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0cm, 2012
비 그치고 햇살 눈부십니다. 꽃과 나뭇잎에 생명수가 되고 대지에 스밉니다. 윤수보 화백은 “숲엔 경계와 구분이 없습니다. 늘 변화하기 때문 이지요”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결국 하나로 연결되는 이치겠지요. 그래서 자꾸만 자연이 그리워지나 봅니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둑에 앉았습니다. 오늘따라 흐르는 세월이 유난히 반짝입니다!
쏟아지는 햇살에 한걸음 비켜선 듯 테라스 양쪽 하얀 벽엔 가지런히 두개의 사진이 걸려있다. 일본전통인형극 분라쿠(文樂) 감성이 풍기는 현대무용가 가나모리 조의 춤과 범속의 번민을 달빛에 태우려는 듯 장삼이 허공 가르는 승무(僧舞)였다.
잔잔하고 여린 아르페지오(arpeggio) 주법의 클로드 아실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 1862~1918)의 아라베스크 1번 피아노 선율이 투명한 정오의 허공으로 로맨틱하게 흩어졌다. 그녀의 어머니는 몽환적 악상에 젖은 듯 골똘한 포즈로 앉아 있다가 가끔은 장미향 알싸한 향수를 선물받기나 한 것처럼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채 오수(午睡)에 빠져있었다.
200×100cm, 2012
정원은 꽃향기로 그윽했다. 테이블엔 시시각각 자연의 변화무쌍한 순간과 빛을 중시한 인상주의 회화처럼 드뷔시의 색채적인 하모닉(Harmonik)과 제1차 대전 말기에 세상을 떠난 그의 일대기를 담은 몇 책장이 팔락거렸다. 그리고 소녀의 바이올렛 컬러 스카프와 까만 긴 생머리가 같은 방향으로 가벼운 바람에 휘날릴 때마다 수줍게 피어난 하얀 은방울꽃에 닿을 듯 말 듯 하였다.
그럴 때마다 길쭉한 돌 화분에 빨간 시네라리아 꽃이 터질 듯 한 심장처럼 한꺼번에 만개하여 일렬로 서서 사랑을 불렀다. 주인 옆에서 조는 듯 눈을 감고 있던 애완견 닥스훈트는 그럴 때 마다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듯 커다란 눈망울을 두리번거리곤 하였다.
숲, 300×200cm Oil on canvas, 2011
티 없이 투명한 심홍색 루비반지가 청순한 그녀의 손가락에서 리드미컬하게 빛났다. 음악은 점점 명상적으로 흐르고 한 낮의 말간 하늘은 차라리 기나긴 여운에 잠긴 듯 완전한 여백을 열어놓았다. 정원의 숲은 가지가지 매혹의 색채감으로 가득 차 그 자체만으로 앙상블을 완성했다.
이윽고 부스스 깨어난 어린 영혼. 그녀는 부드러운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물보라를 일으키며 호수 위를 날아오르는 힘찬 새들의 날개 짓과 생(生)의 신비로운 인연과 참다운 묵시(默示)의 우아한 자태를 나직하게 전하고 있었다.
△출처=글-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3년 4월2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