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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G CHUNG SIK〕 서양화가 정정식|오오 고혹에 불타는 저 낯익은 몸짓! (정정식 화백,정정식,정정식 작가,화가 정정식, 鄭正植,신비한 과일가게)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6. 5. 17:30

 

 

 

 

수양버들 그늘아래 졸음처럼 여름이 찾아들던 그해였지. 라일락이 나지막한 돌담너머 무상으로 꽃향기를 퍼 날랐다. 답례였을까. 길손 하나 없는 어촌에 찾아든 작열하는 정오의 태양이 슬그머니 비켜서며 말간하늘을 보여줬다.

 

 

   

 

 

 

새처럼 훨훨 날아갈 수 있다면 그런 생각으로 바위언덕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던 그때였다. 불덩이처럼 눈에 확 들어오는, 오오 고혹에 불타는 저 낯익은 몸짓!

 

 

 

 

강둑길은 생각보다 넓었다. 커다란 수레바퀴자국이 꽤 넓은 폭으로 움푹 패여 무거운 짐을 이끌고 간 흔적이 뚜렷했다. 햇살은 거리낌 없이 직선으로 맹렬하게 내려와 정말이지 뜨거웠다. 땡볕 그 자체였는데 그러니 그늘이라곤 하나 없는 둑길을 걷는다는 건 얼마나 용감한 결정이던가.

 

강둑을 내려서면 모래흙밭들이 둑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다. 강물과 강둑을 연결하는 완충지대였는데 토질이 좋기로 소문이 나있는 곳이었다. 그 긴 밭을 사람들은 강둑 밭이라 불렀는데 거의 대부분 포도밭이었다.

 

 

 

   

 

 

포도나무는 몸통만 두고 줄기들을 좌우로 뻗어나가게 하여 서로 엉킨 듯 수평으로 드러누워 있었다. 멀리서보면 마치 파란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보였는데 한눈에 보아도 수령이 오랜 나무라는 것을 직감케 했다.

 

저녁이 되면서 조금씩 살랑살랑 바람이 불었다. 그러자 왕성한 성장을 하는 손바닥 보다 큰 포도 잎들이 춤추듯 꿈틀거렸다. 처음엔 바람이 잎을 흔들었지만 이내 잎들이 바람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듯 가끔 펄럭펄럭 소리를 내며 어우러지는 것 같았다. 생소했지만 그 소리가 정겹게 다가왔다.

 

 

 

   

 

 

 

포도나무아래 나지막하고 꽤 길쭉한 원두막은 정말이지 시원했다. 한 여름 밤, 진동하는 포도향기와 잔잔하게 흘러가는 물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맑은 수면에 내 얼굴을 씻는 행복감은 청량한 물의 감촉이 더해 차라리 경건하기까지 했다.

 

천천히 정성스럽게 두 손을 모아 물을 건져 올려 얼굴에 닿았다. 그렇게 서너 번쯤 했었나? 맑디맑은 물에 비친 포도알들이 창공을 향해 훨훨 날아오르고 있는 것이 순간, 보였다.

 

 

 

   

서양화가 정정식(CHUNG CHUNG SIK)

 

 

 

화가 정정식(鄭正植)은 홍익대 미술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2002 대한민국 미술축전 초대 개인전(예술의 전당)을 비롯하여 가나인사아트센터, 미국 ‘2012 Art Miami’아트페어 독립부스전(), 중국 상해 문화원, 우림갤러리, 더 케이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11회 가졌다.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서울오픈아트페어(SOAF), 마니프(MANIF)등 아트페어와 그룹전 300여회 참여했다.

 

 

 

 

출처=-권동철, 원문-월간 리더피아 20156월호. 이코노믹리뷰 201565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