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용(moderation), 30×30㎝(each), Acrylic on canvas, 2009
그곳은 메마른 땅, 사막. 낮고 긴 모래언덕들이 부조리한 편견에 익숙한 딱딱한 표정처럼 무표정하게 드러누웠다. 작열하는 태양에 모래알은 더욱 단단해지고 그럴수록 출렁이며 물결치듯 구릉은 깊어졌다. 협곡은 바람과 친숙했다.
그들이 만나 무어라 소곤거리면 모래가 허공에 휘날렸다. 그 쉼 없이 들이닥치는 숨 막히는 회오리가 시작되면 모든 생명들은 생존의 터널로 숨어들었다. 별무리를 따라 길을 헤쳐 나가는데 모래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입술에서 끈적거리는 무엇, 씨앗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메말라 갈라진 그곳에 청자색 꽃망울이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입안에 박하처럼 번지는 한 방울 물마저 빨대처럼 흡입했다. ‘너’에게 낙원인 것이 ‘나’에겐 삶과 죽음의 경계란 사실이 절박한 상황에서 밀려왔다.
▲ 중용(moderation), 75㎝(diameter), Acrylic on canvas, 2012
달빛아래 일렬로 무리지어 행진하는 개미들이 지나갔다. 구불구불한 자국위로 운명을 내놓은 사내의 얇은 등짝이 쿵쿵 울리는 드럼소리처럼 들먹였다. 개미들은 모래언덕을 헤집었다. 침묵만으로 하는 행위의 묵계(默契)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자그마한 산 하나가 금세 평평해졌다.
이제 모래성(城)은, 없다. 그때였다. 어두컴컴한 그곳서 거뭇한 흔적이 흐릿하게 드러났다. 반사적으로 허리를 펴고 힘겹게 고개를 들었을 때 남과 북회귀선(回歸線)이란 지도가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위도 0°의 선. 그렇다면 적도에 서 있는 것이다.
갑자기 사내는 거친 쉰 목소리로 커다랗게 웃었다. ‘꿈이란 것도 결국엔 언젠가 신기루처럼 홀연히 사라지는 거야.’ 왜 그런 문장이 떠올려졌는지 모르지만 모래알을 씹는 것 보다 깔깔한 쓴웃음을 지으며 한동안 울부짖었다.
▲ 정처 없는 여정(A vagabond voyage 3), 162×224㎝ Acrylic, spray paint on canvas, 2015
구릉을 지나 낮은 언덕으로 올라서자 ‘신(神)의 휴식처’라는 단문의 푯말이 서 있었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여긴 불모지가 아닌가. 또한 기록이란 어디로 가야하는지 정도는 있어야 마땅하지 않는가. 그때였다. 희미하지만 또렷한 다갈색인가 붉은색이 박명(薄明)의 시간에 펄럭이는 불나방처럼 꿈틀거렸다.
절망에서 바라본 얼마만의 율동이던가. 순간 땅 속에서 불쑥 아침 해가 솟아 헤진 가슴으로 훅 들이닥쳤다.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 풀썩 모래바닥에 주저앉았는데 햇살에 반짝이는 뽀송한 모래알들이 차라리 영롱했다.
혼란스러워 머리를 조아렸다. 좌절과 희망이 한꺼번에 중첩되어 밀려왔다. 어둠과 밝음, 만남과 이별처럼…. 그때 다시 한 번 ‘신의 휴식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보일 듯 말 듯 깨알 같이 작은 흐릿한 기호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 중용(moderation), 75×75㎝(each), Acrylic on canvas, 2011
◇여정, 과일주의 풍미
초여름비가 흙길위에 찰랑거렸다. 노인은 물방울에 젖어가는 꽃잎을 말없이 바라다보다 물빛 술잔에 콸콸 적포도주를 그득 부어들었다. 입술에 번지는 과일주의 풍미. 얼마나 많이 달려왔는가. 문득 폭우 쏟아지는 뱃머리서 출렁이는 바다로 펄럭이며 날아가던 연인의 우의(雨衣)를 망연자실 바라보던 청춘의 한 때가 떠올랐다.
그때 이후 맛보는 허망함이 미묘한 감정으로 밀려들었다. 그리고 사막의 시대, 이정표(里程標)를 떠올릴 때마다 고개를 가볍게 갸우뚱하며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출처=글-권동철, 기사원문=경제월간 인사이트코리아 2015년 6월호, 2015년 6월4일 이코노믹리뷰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