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환희, 106×45.4㎝, Mixed media on canvas, 2011
그지없이 맑고 높은 하늘. 황금들녘 물결은, 장대하다. 노을빛 허공을 춤추며 일렁이며 불어오는 바람은 차라리 소슬하다. 한 세월은 이렇게 뜨거운 흔적을 일구고 어느 하루의 낮과 밤을 잇는다.
한번 지나간 바람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전설을 이야기하던 사람…. 그 얘기를 듣고 못내 가슴 저미며 아파하는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그는 말했다. 그리하여 그 바람은 밤바다를 비추는 은하수의 뜨거운 갈망을 식혀주는 일을 하노라. 잠이 들 무렵, 별빛은 손에 잡힐 듯 지척에서 반짝였다.
산모가 잠든 아기의 얼굴을 쓰다듬듯 풍만한 향기를 그득하게 머금은 붉은 과실을 감싼 잎들엔 눅진한 새벽이슬이 달빛에 영롱했다.
◇황홀한 해후, 꽃술이여!
풍요롭다. 광활한 들녘은 겸손의 자세로 시야를 시원스레 열어놓았다. 어둠이 내리는 단풍을 껴안은 호수는 다홍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산뜻하게 붉어 찰랑거렸다. 그 물결위에 로열블루(royal blue), 초록불꽃들이 바람에 휘날리듯 곡선을 그리며 심연의 맘 한복판을 찔렀다.
단지 언덕마루에 무심히 걸터앉았다. 곤줄박이 한 마리가 빨갛게 익은 열매를 입에 물고 눈 깜박할 사이 눈앞을 지나간 듯 했다. 아아, 보기나 한 것인가. 그때였다. 발아래 쥐똥나무 잎들이 소스라치게 흔들리며 까만 열매 몇이 대굴대굴 경사진 비탈길을 굴러갔다. 가지와 이별하는 열매가 어느 갈잎에 스며들 때까지 고개를 길게 빼며 내려다보았다.
“꽃술을 보았다. 꽃은 혼자서 피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의 혜택 속에서 성장하고 소멸해 가는 것이다. 우주와 자연과 교감. 그 격조의 당당한 위세”라며 첫 영감을 얻었을 때를 작가는 회상했다.
꽃술을 빼닮은 삼각의 군상. 하나의 소리로 울리는 대자연의 찬미합창 울림 웅장하도다. 생명의 활기와 신(神)에 대한 경외의 은유 충만하다. 그 영혼의 울림 우주와 인생의 섭리를 심오하게 일깨우니, 감명의 눈물이 흐른다. 꽃술의 눈부신 자리 오오 탄생의 근원이어라!
◇공감, 우주 존재자들의 열망
원(圓)들이 공중에서 비누물방울처럼 춤을 추는 것이 보였다. 스스로 만나 하나로 엉기고 가늘게 펑펑 소리를 내며 누추한 때를 벗어 던졌다. 이제 제 빛깔들로 ‘나’와의 어울림을 희망했다. 우주의 존재자로서 완전한 공감(共感). 그리고 놀라웠다. 스스로도 감지하지 못한 응축된 우리들의 열망은 각양각색의 빛깔을 뿜어내며 밤하늘을 수놓았던 것이다.
“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계속되는 우주의 영원한 시간 속에서 수소가 탄생한 이후에야 왕국이 생성의 작은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으므로, 무의 바다 수면위로 처음 솟아오른 수소는 이후 왕국의 놀라운 다양성 탄생의 최초의 씨앗인 셈이었다.” <원소의 왕국, P.W. 앳킨즈 著>
△2013년 9월, WEEKLY시사, 권병준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