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김지현
담박하게 다가오는 화면에는 나직한 고요가 흐른다. 눈에 보이는 형상과 흐름에 동승한 소리, 촉감, 냄새들은 작품세계의 근간을 이룬다. 자연의 법칙과 변화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관점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의지하는 관념보다 느끼는 자아에 다가서있다. 그러한 인식세계가 펼쳐놓은 찰나 혹은 관찰에서 포착된 촉각적 감흥은 몽상적 풍경을 전한다.
흐릿한,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의 화면은 몸과 의식 그리고 자연에 대한 기억에서 발돋움한다. 또 운필(運筆)과 수묵채색 조화를 통해 저마다 경험적 이미지의 회상, 공감 나아가 또 하나의 기억 생성에 도움이 되게 한다. 작가는 “기억 속 이미지를 자연이라는 매개체로 나타냈지만 단편적인 또는 아련한 기억 속 한 장면들을 그려내고 그것이 관람자의 기억과 교감하는 감성을 표현해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화면의 바탕은 천(cloth)이다. 이것이 고를 때까지 수없이 말리고 우려내는 정련(精練)의 고행 후에야 새벽대지에 맨발로 처음 내딛는 그 서늘한 기운처럼 먹의 번짐을 허락한다. 그러면 허접한 신비로 포장된 통속적 이야기들이 걷힌 천위로 은은히 새싹이 돋아나고 켜켜이 쌓인 한없는 시간의 무늬로 이룩된 자연의 절대성이 ‘나는 누구입니까’라고 절규하며 달려드는 존재에게 각성(覺醒)의 참모습을 드러낸다.
한국화가 김지현 작가는 성신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며, 2012 대한민국미술대전 비구상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가나아트스페이스(서울), 상하이문화원(중국) 등에서 개인전을 8회 가졌다.
△출처=글-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2년 6월1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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