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LEE YOUNG〕서양화가 이영 | 위안의 독백 아름다움 (이영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5. 7. 14:08

 

 Green harmony, 91×65cm oil on canvas, 2011

 

  

 

다소 몽환적인 색채들이 어우러진 서정성 짙은 화면은 비눗방울처럼 가볍고 유쾌하면서도 잊혀져간 열일곱 살 즈음, 어느 순간에 대한 추억을 아련히 건져 올리게 한다.

 

자작자작 나뭇잎 밟히듯 겨울비 지나간 바닷가엔 곧 사라질 것들의 행렬 뿐이었다. 상처로 혼미한 바람은 머릿결을 흩어놓았다. 맨드라미 색 목도리에 감춰진 외로움은 모래사장을 구르는 바퀴처럼 비틀거리며 추위를 전했다. 밀려오는 파도는 그리움으로 물들어 망각을 원하듯 속삭임 잊은 입술로 젖어 들었다.

 

 

 

   

Red Harmony, 91×73Oil on Canvas, 2011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비애로 가득한 청춘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 사르르. 물거품이 흔적을 지운다. 차마 다시 부르지 못할 이름이 목젖에서 메마르듯 아스름 불빛 위 바다 위의 피아노 (Un Piano sur la Mer)’<앙드레 가뇽(Andre Gagnon), >가 안쓰러운 리듬으로 끊길 듯 여운(餘韻)으로 흔들렸다.

 

은밀히 성숙해 가는 交感

미세한 움직임에도 습관처럼 탁음(濁音)을 내는 낡은 나무 벤치. 푸들이 사뿐히 뛰어내려 하얀 털을 휘날리며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석양에 눈 감은 듯해도 등 뒤에서 해는 저물고 마음의 풍향은 이끌림으로 의미를 부풀렸다. 붉은 벽돌의 종탑, 저녁 미사 종소리가 뎅그렁 뎅그렁 정적을 깨울 때 탠덤 바이크(Tandem Bike) 한 대가 수다스럽게 지나갔다.

 

 

 

   

    Blue Harmony, 73×61Oil on Canvas, 2011

 

 

 

짚어내기 어려운 예감이 포플러 잎에 대롱거리는 물방울같이 가늘게 흔들릴 때 마임(Mime) 같은 몸짓과 표정 그리고 빼곡히 담긴 타들어가는 문장들 위 일순 더해진 조바심. 스카이블루(sky blue) 터키석 반지는 뽀얀 손등에서 맑은 영혼의 교신을 바랐다. “올 거야. 매일 이 시간 휠체어 할머니랑 산책하니까.”

 

위안의 독백은, 아름다웠다. 순한 눈빛의 푸들이 가벼이 꼬리를 흔든다. 천천히 다가오는 가벼운 발자국 소리. “사랑했던 첫 마음 빼앗길까봐/해가 떠도 눈 한번 뜰 수가 없네/사랑했던 첫 마음 빼앗길까봐/해가 져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네”<정호승 , 첫마음>

 

호숫가 노랑꽃창포는 오후의 햇살에 순종하듯 침묵했다. 꽃대에 하얀 종을 울리듯 대롱대롱 매달린 은방울꽃들이 미풍에 하늘거릴 때마다 은은한 향기는 벤치를 감돌았다. 정원의 여럿 나비들은 동경(憧憬)의 허무에 얽힌 이야기를 하며 여린 날개를 파닥였다. 가끔 해 저물면 그리움 더 하다며 나비 한 마리가 창공으로 홀연 사라져 가다 화급히 되돌아와 속삭이듯 건넸다. ‘어서 눈을 떠 봐!’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11215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