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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J Kimo(구덕진)|生의 기록이란 또 얼마나 아름다운 정신인가! (멀티미디어 작가 구덕진,화가 구덕진, 구덕진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5. 7. 00:54

 

 

LUCKY STRIKE-Flower, 116.7x90.9cm acrylic on canvas, 2010

 

 

 

비우고 문양을 만드는 반복과 복제의 효율적 표현방식인 스텐실(Stencil)기법. 그리고 마음 열어 소통을 갈망하는 현대인. 아이러니하게도 이 둘의 본질은 다가감이다.

 

 

모름지기 창문에 관한 성찰의 갈무리에 나무의 기여가 컸던 것은 분명하다. 그해 나목(裸木)에서 만개한 복사꽃들이 거세게 몰려오는 풍경에 얼마나 놀랐던지, 뒤로 물러서며 허우적거린 나를 생각해 보시게. 곧 난무(亂舞)하는 눈발들로 판명은 났지만 이미 강렬히 각인된 것은 후회와 아쉬움이 동반된 얼룩진 기억의 건드림이었는데.

 

뜨거운 커피 한잔은 역시 진정에 효과 있었어. 쿠키가 부서지듯 까칠한 입안을 한 모금으로도 무력감을 일으켜 세웠으니까. 그러고 보니 조금씩 실내가 눈에 들어오는 거야. 화병엔 꽃들이 만개하고 있었어. 그러나 화려해 보이는 이면에 곧 시들어 갈 짠한 내 시선과 불안의 그늘만큼이나 애를 쓰는 꽃을 보며 환하게 등()을 죄다 켰지.

 

 

 

   

WINDOW, 130.3x162.1cm acrylic on canvas, 2008

 

 

 

맨 먼저 백합 구근(球根)이 손톱만한 초록 싹을 틔운 것이 눈에 들어왔는데 도대체 어떻게 저 가녀린 줄기로 두터운 두엄을 밀어 올릴 수 있었단 말인가라고 나는 놀라워하며 중얼거렸어. ‘스스로 틀을 깨고 나오는 저 힘, 독하다!’라고 

 

 

가능성 열어놓은 유리공간에 투영된 아름다운 정신

그리고 윈도(window) 너머 밤공기에 자유롭게 유영하는 눈꽃송이들을 바라보다 흐릿하게 창문에 비친 나의 흔적이 애매하게 보였었지. 거울같이 선명치 않은 잔영(殘影)에 뭍은 연민. 애처로움, 안타까움이 배우의 대사처럼 나를 건드리고 지나갔는데 곧 창을 열수 있을 것 같은 어떤 기운이 마음에서 막 일어나려 했지.

 

그때였어. 문을 여느냐, 마느냐의 이 묘한 교차의 선택에서 순간 내가 주목하게 됐던 것은 우연하게도 손잡이였지. 이곳과 저곳의, 안과 밖의 경계에 놓인 손 때 묻은 객관(客觀)의 지점. 하나의 문()을 여는 것이 누구는 너무도 쉬운 거라고 할 테지만 어떤 이에게는 생의 기록이 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기 시작한 즈음 이윽고 새벽이 오고 있었던 거지.

 

 

 

   

You are Superman, 162.1x130.3cm acrylic on canvas, 2009

 

 

 

회색 콘크리트 빌딩 문을 열며 한 사내가 힘겹게 걸어 나오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어. 매혹적인 기억들을 뒤로 한 채 돌아보지 않으려 웅크리며 안간힘을 쓰는 듯 고개를 길게 뺀, 한 때 슈퍼맨(Superman)으로 불린 만능의 그가 오랜 칩거를 마감하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거야.

 

뿌연 안개 속 같이 불확실한 길을 천천히 그러나 성큼성큼 나아가는 그를 보고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어. 스스로에게 가능성을 열어놓는 결단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정신인가! 그는 머지않아 넘쳐나는 기쁨으로 동트는 아침과 함께 돌아올 것이다.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11222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