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서양화가 이창기|젖 빛깔 서린 창문, 매화가지 하느작거렸네-‘마음속 풍경’연작(LEE CHANG KI, 이창기 작가,이창기 화백)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5. 6. 00:20

 

 

소나무, 130×80Oil on Canvas, 2011.

    

 

 

바윗돌 틈 병아리난초가 눈 내린 솔잎의 격조에 도취되어 사색에 잠기다 월하(月下)에 졸고 말았다. 그 그림자에 일렁인 파문(波紋). 몸 흔들어 깨우니, 응답이다!

 

 

맑고 깨끗한 단소(短簫) 음색이 애절히 처마를 타고 한옥 기와지붕을 넘는다. 노년의 선비는 양반다리 자세로 마루에 앉아 깊은 정회(情懷)를 읊조리듯 지그시 눈을 감는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는 소리처럼 곱게 내리는 아침햇살에 부딪힌 소복한 눈()은 남옥(藍玉)빛 살결을 드러냈다. 그럴 때마다 시나위 가락은 송진처럼 끈끈히 흐르다, 끊어질 듯 잠잠타, 두 팔을 벌리는 듯 먼먼 산을 넘어갔다.

 

악기도 목청도 쉬어버린 깔깔한 2월의 저녁공기. 그제야 은은한 매화차 향으로 입안을 달랠 즈음 꿰맨 옷자락이 다정한 바람에 외로이 날린다. 그때 육각의 눈송이처럼 새하얀 단엽의 설중매(雪中梅)가 순결의 향기 하늘거리며 헤진 자주색 도포에 살포시 안기듯 떨어졌다!

 

 

 

   

    매화와 달항아리, 162×112Oil on Canvas, 2011.

 

 

 

소망한다, 사랑 그대로인 채로 영원한 사랑의 길을

젖 빛깔 서린 창문, 더운 김 훅 부니 매화가지 하느작거렸네. 짧은 동안의 떨림 못 봤으면 달빛 지나는 줄 알 뻔했네. 어쩌자고 떨기떨기 달아올라 하필이면 눈 내린 밤 맨살로 피어나는 꽃이라더냐. 애틋한 마음처럼 입 맞추면 툭툭 불거질듯한 꽃망울, 열정의 송이들을 뿌리며 밟고 오시라하네. ‘저는 매화여요. 그대의 꽃 매화.’ 마주잡은 가는 떨림, 단심(丹心)의 그날 밤엔 하얗게 뜬 눈으로 아침을 맞았네.

 

매화불매향(梅花不賣香), 춥더라도 향기 팔지 않음을. 이별은 없는 거라며 고혹의 가녀린 목선을 감싼 검은머리 자르며 맹세한 순정에 피어난 꽃이런가. 애련의 세월은 길고 반닫이 위 달항아리 자태는 농밀해져만 가는데 됫박에 퍼 올린 정화수에 똑똑 떨어지는 그리움의 눈물 방울. 생의 마지막 말을 매화에 물을 주라했던 이황(李滉)과 홀연히 뒤따른 두향(杜香)의 사랑도 이와 다르지 않았으리. 살얼음 낀 강()이 황혼 빛에 물들면 수면위엔 황홀한 꽃잎들이 사랑가처럼 출렁이며 흩어지다 모아졌다 반복하네.

 

 

 

   

    마음속 풍경, 117×80Oil on Canvas, 2010.

 

 

 

이별후의 귀로(歸路). 다시 앉은 강 언덕엔 봄 재촉하는 비 내렸네. 첫 만남도 그랬었을까. 잎보다 서둘러 피어나는 고독한 꽃처럼. ! 대지를 딛고 피어난 꽃이여. 그 처음으로 돌아가는 흰 꽃 수놓인 버선목이여. 이슬비 겨울나무 적시네. 사랑이, 사랑 그대로인 채로 영원한 사랑의 길을 떠나네. 나풀거리는 치맛자락이 짧은 고백처럼 물결에 떨어진다. 뚜루루루~ 긴 울음소리 여운을 남기며 하얀 날개의 두루미 한 쌍이 절벽을 날아올라 겨울 강가를 맴돌다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2126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