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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김호성| 인간이 자초한 ‘두 번째 선악과’ (KIM HO SOUNG, 김호성 작가,화가 김호성)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5. 5. 01:21

 

두 번째 선악과, 90.9×60.6cm oil on canvas, 2011

  

 

 

인간과 비인간·기계 사이를 넘나드는 문명의 자식들과 인간 존재에 관한 예술적 접근의 상상. 일루전(illusion)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화면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얘기다.

 

거부할 수 없는 이브의, 단지 한입 베어 먹음에 백설공주를 쓰러뜨린 강렬한 유혹의 사과에 얽힌 유산(遺産)이 아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사이와 사과의 아우라(Aura)가 펼치는 공존의 길에 관한 해법 찾기라 할 만하다.

 

그동안 신학이며 문학, 과학, 예술 등 폭넓은 인류의 패러다임 변환 고비마다 사과가 자주 등장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구겨진 보자기 혹은 안과 밖이 보이는 투명한 얇은 비닐처럼 구별이 뚜렷하지 않는 것들에 놓인 작품 속 사과도 그래서 오늘의 연대기(年代記).

 

 

 

   

두 번째 선악과, 90.9×60.6cm oil on canvas, 2011.

 

 

 

두려운 익숙하지 않은 존재들과의 공존

무장해제 당한 듯 한 인간 모습이 있다. ‘갈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의 차이라는 명대사가 절절히 느껴오는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의 인간은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입력당해 마치 사육되는 것처럼 가상현실을 살아간다. 지난 2004년 미국식품의약국(FDA)16자리 숫자로 구성된 신원 확인 목적의 체내이식 베리칩(verichip)을 승인했다. 인간 바코드다.

 

인간도 기계도 아니면서 동시에 인간도 기계이기도 하며 안정성과 불안정,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경계를 뒤 흔들거나 와해시키는 중간적 존재자들. 기존의 경계를 해체시키는 사이보그(cyborg). 시속 10km로 달릴 수 있는 로봇이 언제까지나 그 속도에 머물지는 않듯이 로봇이 인간의 기능들을 대신하는 것이 점점 늘어날수록 인간의 존재성 상실은 명약관화하다.

 

생명이 없는 것, 하등한 것으로 치부된 이것들은 인간에, 인간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공생한다. 이 지점에서 여전히 인간은 우월한가?’라는 명제를 던질 때 명징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면 인간이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는 반증이 된다. 작품 두 번째 선악과는 그러한 것들의 존재와 가치 의미에 대한 물음을 평면의 캔버스를 통해 다가온다.

 

 

 

 

   

 

두 번째 선악과, 65.1cm×45.5cm oil on canvas, 2011.

 

 

 

 

인간의 고귀함을 통해 존재 의미를 찾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그 미천한 것들과 하나의 평면에 놓고 존재를 사유하는 것이다. 어떤 근본적 위계도 사라진 하나의 평면에서, 그것들과 만나는 양상 속에서, 존재의 의미는 발견된다.”<이진경,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사과가 섬 위에 떠서 흔들리거나, 섬이 풋사과의 껍질 위에 앉혀있거나 와 다른 것을 보는 관점을 바꾸지 않으면 내 존재의 힘이 쇠약해질 수 있다는 사유의 전환을 요구 받고 있다. 보이지 않은 것들에 인간이 지배당하는 시대에 이를 사과가 위력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11110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