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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이청기(LEE CHEONG KEE), 1960~70년대, 유년의 아련한 축제와 놀이의 기억들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5. 4. 7. 17:12

 

 

농악놀이, 92×73oil on canvas, 2014

 

 

 

봄이 오면 어느 한 날 마을은 온통 잔치 분위기였다. 돼지고기와 떡과 김치 등 각종 부침개를 푸짐하게 장만하여 마을 전체가 큰 잔치를 벌였다. 이런 날이면 어른들은 이른 아침 마을 어귀 성황당에서 집안의 평안과 번영 그리고 아이들의 무탈한 성장을 기원하는 고제(告祭)를 정성껏 지냈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아침이면 음식 장만으로 어머니들은 분주했다. 이윽고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깃발이 펄럭이면 풍악이 시작되었다. 농악(農樂)은 언제나 흥겨웠는데 가가호호 마을을 돌면서 좋은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아이들은 한 손엔 먹을 것을 들고 농악의 춤동작을 배우고 흉내를 내며 행렬을 따라다녔다. 풍년을 기원하는 봄의 축제는 오래된 마을의 전통이었다.

 

 

   

씨름, 46×38mixed media, 2012

 

 

마을 앞 넓은 들녘으로 가는 길 옆 동구 밖엔 제법 큰 모래판이 있었다. 둥그렇게 모래를 부어놓은 그곳은 마을의 전용 씨름장이었는데 동네 형 중의 한사람은 큰 씨름대회에 나가서 푸짐한 상을 받아 동네잔치를 벌인 적도 있었다.

 

어른들은 농사일 사이 한가한 날 저녁나절 잠깐씩 모였었다. 그런 때면 아이들을 불러 씨름을 붙이곤 했는데 이긴 아이는 기세가 등등했지만 두 번을 연속으로 패하면 아이는 울면서 집으로 가다가 엄마를 만나면 더 큰소리로 서럽고 분하게 우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게 씩씩하게 아이들은 성장했다. 씨름장은 고향의 추억이 담긴 명소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재기차기를 잘 하는 건 아이들 세계에서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제기차기, 55×55oil on canvas, 2011

 

 

특히 좋아하는 여자 친구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 복순이 앞에서 재기차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 , . 격려의 눈빛과 경이로움의 표정으로 응원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힘든 걸 참으며 신기록을 세웠다.

 

 

   

소꿉놀이, 55×55oil on canvas, 2011

 

 

한편 노을이 질 때면 여자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꿉놀이를 즐겼다. 어린 남동생을 잠시 등에서 내려놓고 친구들과 놀이에 푹 빠져 놀았다. 아이는 엉금엉금 나무 뒤에서 풋사랑을 키우던 이웃누나에게 기어갔다.

 

 

   

공기놀이, 46×38mixed media, 2012

 

 

마침 쑥스러워 얼굴을 붉히던 참에 아기를 껴안으며 제법 어른스럽게 놀아주고 있었는데 누나는 순간 동생이 보이지 않자 상기된 얼굴로 찾느라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다 나무 뒤 아이를 발견하곤 울먹이며 뛰어왔던, 가슴 쓸어 내렸던 추억을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닭싸움, 55×46mixed media, 2013

 

 

=권동철, 월간 Leaderpia(리더피아) 20154월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