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발자취(年代記)

〔나의그림 나의생애|화가 정현숙①, 2000~2004년〕캔버스위에 번짐, 번짐 위에 원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4. 24. 04:33

 

 

before and after, 120×61㎝ oil on canvas, 2001

 

 

화가 정현숙의 ‘나의그림 나의생애’는 원(圓)과 번짐을 화업 중심에 놓은 작가의 작업 발자취를 년대별로 정리 구성해 작품의 진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의 ‘나’는 필자를 지칭합니다.

 

이 시절, 필자의 작업 요점은 ‘번짐’이었다. 캔버스를 무명천으로 쓰면서 약간 젖은 상태에서 아크릴 물감을 떨어 트려 번지게 하는 것이었다. 동양의 블랙 또는 블루의 물감, 번짐이었다.

 

그 번짐 위에 금빛 물감을 여러 번 겹쳐 칠해 번짐이 아스라이 보이는 상태에서 우러나는 원(圓)이 보인다. 그 위에 다시 유화물감으로 정확한 원 형태를 여러 개 그려서 조형세계를 성취해 나갔다.

 

 

210×91㎝ mixed media, 2001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단순 간결함을 지향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따르면서 동양적인 이미지로 깊은 시간성을 품고 있다. 원의 윤회사상, 생명의 순환…. 그러한 염원을 담은 것이다.

 

 

130×162㎝ mixed media, 2001

 

한국인,  源流의 공감

미국 현지에서 반응이 뜨거웠고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던 지난 2000년 시카고 아트 페어 때였다. 많은 관람객들 중에서 한국인 3세 두 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한국 언어도 못하는데 그러나 자신의 아버지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대화를 정확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필자의 작품에서 한국성의 느낌, 발견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 분들도 그것을 찾고 있었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었다. 자란 환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혈맥에 흐르는 한국인 원류(源流)의 공감이라는 것에 작가로서 많이 고무되었었다.

 

 

62×62㎝ oil on canvas, 2002

 

 

필자는 스스로가 단순하고, 색깔이 많은 것보다 적은 것을 추구한다.  원을, 가장 단순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 가운데 그 안에 많은 것을 가진 것으로 본다. 간단하게보이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보편적으로 표현해 낼 것인가가 언제나 나의 작업 화두이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조용하고 사색적이다’라는 이야기가 들려올 때 울컥 감동하게 된다. 필자와 관람자가 원에 대한 깊은 동감의 표현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리라.

 

△출처=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