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을 말하다

화가 조향숙(JO HYANG SOOK)┃TO FIND LOST TIME-ANNAPURNA②(조향숙,조향숙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8. 19. 16:06

 

 

 

 

  

      산 속 , 길속의 , 내안의   

 

마차푸차레(Machapuchare) 산봉우리. 안나푸르나(HIMALAYA-ANNAPURNA)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는 모자와 봉우리의 닮은꼴이 단박에 조형적으로 들어온 것은 어쩌면 화가의 특권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저 산봉우리를 경외하며 산자락 아래 옹기종기 깎아지른 산을 개간하고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며 그곳이 바라보이는 곳에 마을의 터를 잡고 있었다. 자연과 동화(同化)된 자연스러움. ‘닮음의 본질은 믿음이라는 지인(知人)의 말이 떠올려졌었다. 함께하는 마음의 내재된 동질성이 일상에서 쓰는 모자와 봉우리의 닮음이라 여겨졌다. 그리하여 일체감이란 오래된 근원에서 발원하는 자연스러운 교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연과 마음의 닮은 생김새야말로 필자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원형은 아닐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히말라야 계곡을 흐르는 이른 아침 차디찬 물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그런 상념의 감흥에 도취해 단숨에 그려낸 스케치이다.

어둠을 열고 붉은 해가 뜨는 순간, 마차푸차레의 아름답고 황홀한 핑크색 하늘이 우리 삶의 희망을 북돋우듯 찰나의 황홀경을 잠깐 보여주곤 아쉽게도 사라져 갔다. 이마의 땀을 잠시 훔치며 바라본 하늘엔 어느새 창연(蒼煙)한 흔적이 여운을 달래듯 흐르고 있었다.

 

 

   

 

 

마차푸차레 주변의 산()들은 마치 어깨를 나란히 함께 같이하며 풍파를 이겨낸 세월처럼 깊은 주름의 형상으로 견고하게 턱 버티고 서 있었다. 지긋이 꿈적 않고 눈을 감고 있는 듯 태고(太古)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쉬이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Aura)앞에 너무나 작은 의 존재를 가까스로 보듬은 채 바라볼 뿐이었다.

 

고요하던 하늘에 마치 양떼같이 마치 순식간에 구름이 몰려들었다. 하늘이 검어지고 콩알 같은, 은촉(銀燭)같은 빗발이 하늘에서 내리 꽂혔다. 필자는 그때 생전 처음 보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았다. 그리고 참으로 이상하게 볼을 타고 흐르는 빗물과 뜨거운 눈물이 하나 되어 내 아득한 삶의 진한 여정(旅程)이 파노라마처럼 씻겨 흘렀다.

 

 

   

 

 

구름이요 물인 마음의, 빛깔

. ()은 길에서 비롯되고 구불구불 난 산길의 도상(途上)에 감도는 안개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하여 한 발, 한발자국 따라가는 것이 아니던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 산속에서 무한한 형태의 삶들이 보였다. 히말라야의 깊고 깊은 산 속에 또 산, 길속의 길, 사람 안 마음의 빛깔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봉우리를 부드럽게 감싸고 올라가는 구름. 그것이 구름의 예법(禮法)이었다. 봉우리를 휘도는 운해(雲海)는 이 봉우리 저 봉우리의 안부를 전하고 있었다. 다감하고도 장엄한 교향곡의 선율이 산에 울려 퍼져 내 가슴속으로 거침없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바위를 휘돌아 계곡을 이루는 설산(雪山)의 녹은 물줄기는 서로를 껴안고 하나로 흘렀다. 그 투명한 물의 파동(波動)에 일렁이는 저 봉우리를 감싸며 창공을 노닐다 사라져 가는 운무(雲霧)의 유유자적이 비춰졌다. 구름과 물의 일체(一體). 나도 구름이요 물이었던 것이었다. 그들 속에 생()과 멸(), 잃어버린 시간이 담담한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출처=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 (2014818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