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을 말하다

〔나의 작품을 말하다〕한국화가 변명희|살아 숨쉬는 정신성, 영정인물화(변명희,화가 변명희,변명희 작가,초상인물화,임모,臨摸)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4. 23. 23:06

 

 

 

 

윤급 초상화, 조선시대 변상벽 -臨摸, 60.5×27견본채색, 2011 

 

 

조선시대 초상인물화 중에 예술성이 가장 탁월했던 시기가 바로 18세기였다. 특히 영조년간(英祖年間)에 활동했던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 1730~?)은 초상화를 잘 그려 국수(國手)’로 불려 졌었다. 그는 윤곽의 선() 안을 색으로 칠하는 전통적인 구륵법(鉤勒法)에 음영법(陰影法)으로 동양화의 선의 맛을 잘 구현하고 있다. 

 

 

근암((近庵) 윤급(尹汲, 1697-1770) 초상이야말로 변상벽의 평생 화업(画業) 총결산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초상에서 점과 사마귀까지 정치(精緻)하게 묘사함으로써 당시 인물의 내면세계를 섬세하고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선조의 예술 혼()이 담긴 작품을 모사(模寫)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었다.

 

 

 

 

윤급 초상화, 조선시대 변상벽 -臨摸, 165×97견본채색, 2011

 

 

인물의 기운 쏟아내야 하는 영정인물화기법

화원중심의 정밀묘사에 채색그림 화풍을 지칭하는 원체화풍(院體畵風)의 대표적 화목인 영정인물화기법은 주재료인 견, , 묵의 섬세한 특성과 정교한 필치에 의해 오랜 시간을 들여 제작된다. 천기의 직관력과 고도의 수련을 필요로 하는데 그리고자 하는 인물의 내면과 성정을 통찰하여 기운을 체득한 후 다시 화면에 인물의 기운을 쏟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영정인물화기법은 올이 성글고 투명한 비단에 아교포수를 한 후 맑은 색을 얹어 쌓고 또 쌓아야 비로써 원하는 진한 색을 얻을 수 있다. 그러기까지 반복된 채색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처럼 바탕인 비단의 물성에 맞추어 색을 한 층 한 층 쌓아나가는 과정은 실로 오랜 시간과 정성을 요구한다. 

 

 

비단그림은 산수화나 화조화 등에도 많지만 조선시대 전문적인 화공들에 의해 카메라가 없던 시절 임금이나 사대부들의 인물화를 리얼하게 남기기 위해 아주 정교하고 섬세한 작업과정을 거쳐 귀하게 제작되던 기법이다.

 

 

 

작업에서 얻는 에너지와 진정성의 행복감

은은하고 투명하여 속살이 내비치는 비단 위에 수 십 차례 맑은 채색을 쌓아올렸다가 말리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모든 에너지를 모아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작업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이 결코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투명한 비단에 한 층 한 층 쌓아 올려 질 때마다 짙어지는 색의 그윽함과 예상치 않았던 새로운 색들이 구현되는 순간들의 미적 감흥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아름다운 행복감이다. 그리고 섬세하고 반복된 붓질을 통해 작품에 몰입하는 과정에서는 노동을 한 후에 느끼는 땀방울의 시원한 청량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복잡하고 반복된 과정을 거치고 완성된 작품은 작품에 쏟은 정신적 에너지와 삶에 대한 진정성이 오랜 땀의 시간과 열정에 모두 녹아 있는 집합체이다. 그 어떤 다른 작업에서도 느낄 수 없는 예술 혼을 느낀다. 

 

 

무욕의 청아하고 맑지만 결코 가볍지 않으며 화면의 밑바닥에서 우러나는 깊고 그윽하고 맛이 있다. 숙성된 김치나 발효된 된장의 맛이라고 할까. 필자는 은은하고 투명한 청아함과 함께 바닥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그윽한 맛과 멋을 내려고 애쓴다. 

 

 

이것은 한두 번 진하게 칠하는 것으로는 그러한 맛을 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 작품을 하려면 작은 소품이라도 짧으면 보름에서 한 달씩 소요된다. 예술작품은 정신활동의 결과물이라고 할 때 작품에 얼마만한 정신적 에너지와 작가의 열정이 녹아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혹자는 필자에게 다른 쉬운 작업도 있는데 왜 이렇게 고된 작업을 하느냐라고 간혹 묻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마다 빙그레 미소만 보였지만 고도의 정신성이 살아 숨 쉬는 한국 고유의 미감을 구현하려는 것이 필자의 영정인물화작업 목적이다.

 

 

 

 

한국화가 변명희(ARTIST, BYUN MYUNG HEE)

 

 

 한국화가 변명희 작가는 서울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박사과정 수료했다. 우덕 갤러리, 스페이스 이노 갤러리, 목인 갤러리, 갤러리미즈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출처=이코노믹리뷰 2013년 12월9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