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서양화가 공기평|햇빛·달빛 품은 꽃들의 속삭임 ‘Funny Funny’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7. 17. 23:40

 

Funny Funny, 100×80.3Oil on canvas, 2009

 

 

 

동화처럼 맑고 경쾌한 화면 ‘Funny Funny’시리즈  

 

어제 봄비가 내린 탓일까. 강물 위 쏟아지는 아침햇살이 수정처럼 눈부셨다. 잔잔한 물결 위로 셀 수없이 쏟아지는 강렬한 반짝임. 자연의 위대한 압축으로 빚은 결정(結晶)이 튕겨 오르면 수면은 뽀로록 비눗방울처럼 화답했다.

 

베란다가 있는 도심의 퍼니(Funny)한 카페는 오늘 그녀에겐 특별한 장소다. 기다리던 약속 날이 온 것. 단아하게 묶어 올린 머리와 핑크 사파이어 목걸이에 촉촉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베리 핑크 립스틱 입술로 마무리한 그녀는 화사했다. 파릇하니 새싹을 닮은 심플한 연두색 원피스에 보송보송한 얼굴의 숙녀.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경쾌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카락 사이로 박하사탕 민트향이 휘날렸다. 두근거리는 설레임 애써 감추지만 얼굴은 서둘러 볼그레하다. 향긋한 허브 티 한 모금 입술에 적신다.

 

 

 

Funny Funny, 100×81Oil on canvas, 2009

 

 

이제 막 오후의 나른한 햇볕은 브라운 컬러로 덧칠한 회벽(灰壁)을 타고 그림자를 만들며 조금씩 내려오고 있었다. 두 손으로 감싸면 살포시 기대어 안길 것 같은 연보라 화병(花甁)엔 짜릿한 첫 키스의 밤꽃 흥분이 맴돌았다. “이 세상의 향기란 향기 중 라일락 향기가 그중 진하기로는/자정 지난 밤 깊은 골목 끝에서/애인을 오래오래 끌어안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시영 시, 라일락 향)

 

그녀가 앉아 있는 카페 풍경의 퍼니 한 화면. 화가 공기평의 달콤한 형형색색 변주들을 담은 그림들은 시각적인 착시를 던져줌으로써 부조(浮彫)화된 형태의 회화를 만나게 한다. 꽃이며 나비며 산()을 거처로 생기발랄한 일상을 쉼 없이 달리는 다람쥐와 새들은 인간의 삶과 생명의 이야기들을 끌어내고 있다. 봄이면 흙을 뚫고 폭폭 솟아나는 생명처럼 바닥에 닿은 상처들이 튀어 올라 찬란하고 눈이 부신 햇빛과 노래에 이르는 한송이 불꽃으로 승화되고 있다.

 

 

 

 

Funny Funny, 91.9×72.7Oil on canvas, 2009

 

 

박옥생 미술평론가는 달콤함으로 가장하고 유혹하는 현대를 담은 순간적이고 매혹적인 화면들은 진중하고 무거운 삶의 무게들 언저리에 피어나는 꽃처럼 역설적이다고 썼다. 땅에 스며든 수많은 땀과 눈물들과 아픔들이 마침내 피워낸 꽃이자 바위에 무수히 부딪히며 자기 정화(淨化)의 시간을 견디어 내는 계곡물과 같은 울음이 뒤섞이다 마침내 걸러내어 내지르는 한바탕 웃음 같은 양지(陽地) 이야기이리라.(작가노트)

 

어느새 저녁 강가에선 산들바람이 모락모락 연기처럼 스며들었다. 조금은 지루한 기다림인가. 꽃병엔 하나 둘 꽃들이 피어오르고 은하수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처럼 총총히 연달아 늘어서서 수선화는 샛강 기슭 가장자리에 끝없이 줄지어 서 있었다.”(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 수선화 중)

 

찬란하게 피어나는 꽃은 푸르른 달빛 아래 흥겨운 가락으로 일구어냈을까.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인적 없는 카페 혼자 남은 여심(女心). “추억에 당신을 맡겨요. 마음 열고 들어가요. 참 행복 의미 그곳에서 찾는다면 새로운 삶이 시작될 거예요”(뮤지컬 캣츠, Memory ) 노래가 끝날 즈음, 저어기 급하게 택시가 멈춰서는 것을 직감했다. 부지런히 다가오는 걸음걸음으로 살포시 고개를 든 그녀의 눈이, 빛났다!

 

 

출처=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201138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