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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박철환 (PARK CHUL HWAN) | ‘목련’ 연작… 매혹적 화폭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7. 12. 01:20

 

  목련·Magnolia 50×100cm Acrylic on canvas, 2008

 

 

가슴 속에 품은 격정의 떨림   

세심하고 정교한 붓터치로 펼친 희망의 예시

 

 

귀향처럼 목련이 돌아왔다. 아늑한 봄날 늦은 새벽, 오랜만의 고향 술자리에서 배불리 마신 사내의 불콰한 입김이 꺼이꺼이 밤공기를 타고 목련나무 아래를 지나면 온화하고도 따사로운 햇살이 아침을 열었다. 열아홉, 연분홍 머리핀 찰랑이는 댕기머리 무리들이 재잘거리며 는 자목련 꽃들은 괜스레 수줍어 볼그레하게 볼이 달아올랐다. “저렇게 자목련을 흔드는 저것이 바람이구나. 왠지 자목련은 조금 울상이 된다. 비죽비죽 입술을 비죽인다.”(김춘수 시, 바람)

 

어느 날 소녀는 봄나물 캔 바구니 위에 소복이 떨어진 목련 꽃을 담아 언덕을 내려왔다. 초록의 바람은 상냥하고 홀로의 속삭임 그리움이 묻어 있는 눈으로 빤히 목련 꽃을 바라다보면 꽃 속엔 별리(別離)의 달이 떠오르곤 했다.

 

외로이 가지런히 정지된 듯하다. 도자에 목련을 담은 손길은 보이지 않은 채, 곱다. 너무도 고와 향기마저 잊게 하는 목련. 산을 타고 강을 건너 내려온 안개는 서둘러 먼 길 왔었나보다. 해가 중천에 뜬 아침까지 몽롱한 기운으로 백자(白瓷)에 잠들었다. 마음을 놓고 간 자리엔 철없는 봉오리들이 한밤에도 몇 개씩 불거져 나왔다. “자왈(子曰) 요염타!”(고은 시, 봄소식)

 

 

 

목련·Magnolia, 90×162.5cm Acrylic on canvas, 2008

 

   

 

저녁 무렵의 강둑. 들불 매운 연기가 매캐하게 바람을 타고 느리게 번지면 꽃잎은 열까말까 주춤주춤. 어이하여 소식 없는가. 바라만볼 뿐 감싸 안는 이 하나 없는 순명(純明) 같은 기다림에 눈시울 붉게 여민 순정. 타다만 풀잎위에 애타게 연 마음을 풀어 놓는다. 실바람 따라 사라지는 연기의 흔적. 잡히는가하면 사라지고 봉오리는 허공을 향해 자꾸만 도톰하게 부풀어만 갔다. 목련 그늘을 지나는 무명 가객(歌客) 일장춘몽(一場春夢) 노랫가락만 흥겹다.

 

도자기와 함께 하는 매혹적인 자태의 자주색, 백목련 꽃잎. 세심하고 정교한 필치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오랜 날 타내려온 그리움에 익은/가슴 닿는 꽃익힘의 향그러운 젖흐름에 안겨. (박두진 시, 항아리)

 

도자기 선() 안팎을 중심으로 지극히 사실적인 전경의 대상. 배경은 돌가루 등을 젤에 개서 긁고, 찍고, 뿌리고, 베껴내어 선과 면의 복잡한 중첩에 의해 추상적인 효과를 나타내 깊은 감응으로 물들이게 한다.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고 선과 빛과 공간표현을 아우름으로써 맨발로 달려갈 감동적인 화면은 우리들 가슴속 품은 격정의 떨림을 단박에 건져 올린다. 이것이 박철환 붓놀림의 힘이다. 이러한 구상과 추상의 공존은 실재와 언어와의 분리에 대한 증거이자 유기적 통합에 대한 희망을 예시한다.”(이선영 미술평론가)

 

 

 

 

  목련·Magnolia 50×100cm Acrylic on canvas, 2006

 

 

오직 절정으로만 피어나는 꽃. 자신만만히 두 팔을 맘껏 펼쳐 속살 전부를 드러내는 저, 저 우아함이여. 엄동설한 가는 가지 그 힘줄 끝에 매달려 바동바동 언 손 호호거리며 울면서도 끝끝내 놓지 않았던 열정이 없었더라면 지금, 어찌 한 점 구김 없는 완전으로 뽐낼 수 있었으랴.

 

아아 저렇게 목련꽃 자수가 놓인 이불에 싸여 엄마 품에 잠이든 평화로운 아기의 얼굴처럼, 피어올라라. 곧 신록의 시간이 올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 허허 한바탕 웃음으로 날아갈 묵은 기억들을 이제 목련 물오른 가지에 녹이시기를.”(작가노트)

 

커튼을 젖히니 호수의 은빛 햇살이 방안 가득 우르르 몰려든다. 가슴 벅찬 재회(再會). 여인은 에메랄드 귀걸이를 목련 꽃 옆에 살포시 두고 거울 앞에 앉았다.

 

 

출처=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2011223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