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KIM SUNG HYE(서양화가 김성혜)-해와 달, 오방빛 향연 한갓진 정담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7. 14. 22:38

 

-Sonido-일월도, 91×116.7Mixed Media, 2014

 

 

강바닥엔 우윳빛 고운모래가 그대로 보였다. 간간히 더위에 지친 텃새가 날아와 발을 담그곤 금세 날아갔다. 강물이 억새 습지를 지나자 낯선 인연처럼 깎아지른 절벽이 펼쳐지고 그 꼭대기에 기개를 떨치듯 대숲사이 누정(樓亭)이 언뜻 보였다.

 

구슬땀을 흘리며 잡초 우거진 길을 겨우겨우 찾아 오르니 뜻밖에도 마당의 둥그스름한 울타리엔 등황색 원추리 꽃이 만개해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지만 음각(陰刻)으로 새겨진 거무스름한 목판 편액(扁額)의 흰 글씨는 선명했다. 그러고 보니 암수봉황 두 마리가 나란히 좌우 천정에 새겨져 아직도 여전히 발돋움하는 정담(情談)이 전해오는 듯 했다. 그 주변 풍경엔 해와 달, 춤을 추듯 달려있는 토실한 자두와 나비 그리고 산과 물이 융화되는 터전에 사랑각()’이 다소곳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Sonido, 53×45.5

 

 

 

상상과 직관의 자유로운 심미세계

숲속 바람, 낙하하여 돌 틈 사이 휘돌아 흐르는 물줄기, 무인경(無人境)서 목청을 뽐내는 새들의 은밀한 노래. 화면의 은유는 미묘한 끌림과 탄력을 수반하고 동시에 감각을 생기 넘치게 한다. 마치 조끔씩 열리는, 투명한 창 너머 드러나는 신비로운 정원처럼 심상(心象)과 명료, 존재와 경이(驚異)는 말하자면 경계선이 허물어진 인식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심미(審美)의 세계다. 작가가 열어놓은 그 지평에 들어서면 그때 비로써 손안에 느껴오는 빛과 소리의 파랑(波浪)과 조우하게 된다.

 

 

 

 

53×45.5

 

 

꿈과 현실, 그대와 나, 현대와 과거가 해와 달을 연동하며 내재된 이야기로 풀어가는 일월도시리즈. 오방색채감에 생명의 모태로써 대지(大地)는 체크무늬를 썼다. “일월도를 시작한 것은 풍경이 아름답고 이야기가 많고 새와 짐승, 꽃과 나비 등 한국적 서정성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시작했다. 원화(原畫)에 충실해서 그리려했다. 현대적 표현기법으로 재해석, 풍자해 나아갈 것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황혼 드리운 숲속에 미동(微動)도 않고 그대로 앉아있다. 무상(無常)의 명상 속을 노니는가. 노랗고 초록으로 굴절 된 석양빛은 시공(時空)을 초월한 이미 새 이상의 거룩한 실존의 용모를 선명히 드러냈다. 그럼에도 애증을 녹이는 실마리, 밤하늘 도글도글 한 별처럼 점점(點點)으로 빼곡한 색채는 금방이라도 후드득 날개를 펴고 허공으로 사라질 듯 한 생명력을 발산한다.

 

 

 

33.3×24.2

 

 

 

-Sonido’연작은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 같은 넉넉한 담론의 정경과 닮았다. 그렇게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은 상상과 직관의 힘으로 창조되는 무색 캔버스 자존(自存) 위에 드리울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림을 하면서 이따금 한계를 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를테면 혼()을 잡을 수 있는 작품을 내 생애에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화면의 형상화되어 있는 주제들은 봉황을 비롯하여 여러 생물체로 홀로 당당히 표현된다. 그것은 초심(初心)과 다름 아니다. 나는 그 힘을 믿는다.”

 

 

 

 

33.3×24.2

 

 

 

야망과 허무의, 영토

심산유곡(深山幽谷) 물줄기가 흘러내려 이룬 청청한 호숫가. 잔잔한 물결에 투영된 달밤. 어디선가 그리움으로 처연한 여인의 가녀린 콧노래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수면에 어른거리는 입하(立夏)의 이팝나무꽃잎이 슬프도록 교교하게 하늘댔다. 시푸른 소나무는 바람에 흩날리는 꽃향기에 스르르 눈을 감고 호방(豪放)했던 풍운의 시절을 기억했다. 초저녁 단잠에 깨어난 봉황(鳳凰)이 슬며시 솔가지를 흔들며 가슴 뜨거워지는 위대한 사랑테마 하나를 들려줬다.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 음악극 신들의 황혼(Gotterdammerung)’이 숭고하고 화려하게 저녁 숲으로 겸허히 스며들었다. 그때 셀 수 없는 휜 꽃들이 푸르른 달빛과 물고기와 어울려 장관을 이뤘다. 수정처럼 맑은 눈동자의 여인이 자그마한 사랑의 비밀상자를 가슴에 안고 웃는 듯 한 미소를 머금고 물가를 서성이는데 오오 누가 그녀의 물음에 대답해 줄 것인가!

 

 

출처=월간 ‘Leaderpia(리더피아)’ 20147월호 기사.

= 권동철, 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