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화가 임종두(LIM JONG DOO)|고혹살빛이 길러낸 동경의 밀어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7. 11. 09:40

 

 

同行_162x96.8cm_장지에_석채_2010

 

 

강안(江岸)엔 아름드리 수양버들 한 그루가 자상한 미소로 서 있었다. 물안개 자욱한 아침, 희끄무레한 사이 연녹색 잎들이 잔바람에 흔들리면 황홀한 몽상적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휘익 한줄기 바람이 지나가면 수줍은 민낯 강물이 순간 보일뿐 가뭇없이 안개는 흩어지고 산과 나무와 강물과 새들이 하나 둘 존재의 헤아림으로 밀려왔다. 흔들리는 나뭇가지 강물에 비춰질 땐 붉은 살결도 함께 드러났다. 햇살, 물고기, 꽃잎 그리고 가 습합(習合)되는 신비로운 섭리가 무수한 생각의 흐름으로 지나갔다.

 

 

 

 

 

 

어느새 긴 강둑길엔 노을이 드리워지고 무수한 시간의 목록을 켜켜이 쌓아올린 퇴적은 발아하는 씨앗에 용기를 북돋웠다. 어디선가 비파(琵琶)소리가 저녁을 물들였다. 저만치 굴곡(屈曲)을 흘려보내려는 듯, 머리에 꽃을 꽂고 아름다운 날들을 꿈꾸는 여인들의 행렬이 보였다.

 

 

 

 

 

 

예지로 단장한 여인의 심상

정중동(靜中動)이다. 대상을 두고 살짝 장난 끼를 발동하면 왜 그래, ?’하면서 다감하게 다가오는 신선한 생동감이 화면에 흐른다. 꽃봉오리 새들은 사색에 잠긴 듯 부드럽게 무언가를 응시하는, 욕망이 분출하듯 질주하는 여인과 동행한다. 미세한 표정, 동작은 의미를 함축하고 생애 그 지평을 열어놓은 여백은 강물과 대지처럼 관대하다. 사색적이며 흥겨운 감각의 생기가 발산하는 자유로운 몸과 표정 색채감에서 비롯되는 확산의 기운에 동화(同化)되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은 본성에 충실한 서로를 끌어당기는 분별력이듯 평면에서 두 점() 간극을 가장 빠르게 이어주는 것 또한 직선이다. 화면이 지향하는 자연성(naturalness) 역시 그러한 의미에 가깝다. 또한 직각과 예각의 적절한 분배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드넓고 선명한 평면은 무한히 확장 가능한 감성공간을 열어놓고 있다.

 

 

 

 

 

 

 

이것은 정신이 체화(體化)된 그러므로 물아(物我)가 일체(一體)되는 선()이 주는 선물이자 소통이 공감으로 직결되는 강렬한 메타포의 함의와 다름 아니다. 고독과 소외가 현대인의 큰 질병이 된 마음의 불모지에 우아, 발랄, 겸양을 두루 갖춘 한 여인이 홀연히 나타나 왠지 를 어엿하게 세우고 에너지를 솟아나게 한다.

 

친숙하게 느껴오는 화면의 여인들. 작가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얘기하나를 전했다. “어린 시절 고향집 장독대 옆에 맨드라미가 저절로 자랐었다.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 어머니는 재들도 얼마나 목이 마를까하는 눈길로 한바가지 물을 떠서 쫙쫙 뿌려주는 것이 아닌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연로하시지만 어머니도 꽃을 좋아하시는구나. 그리고 씨앗이 하나 떨어지면 어떻게든 키워내는 만물을 소생케 하는 자연의 마음을 읽어내는 교감. 여인이 천지(天地)의 마음 이었다.”

 

 

 

 

 

 

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추구하는 작품세계의 그에게 그림이란 대체 무엇인가. “생활인으로 보면 무모한 그러나 정신의 울타리에 서면 너무나 경건한이라고 했다. 일상에 파고든 치열함. 우주관에 대한 탐구는 그렇게 뜨거운 것이다.

 

 

 

 

달리달리53X45

 

 

, 금강석 같은 아름다움이여!

솔잎사이를 지나는 바람처럼 풍파(風波)가 윙윙거리며 조각나 사라진다. 순간으로 지나가는, 찬연함. 맨발로 낙엽을 밟을 때처럼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편 책장이 바스락 소리를 내다 이리저리 심하게 펄럭였다. 그러다 수면(水面)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는 듯, ‘물고기 곤()이 새 붕()으로 변해푸른 바다 위를 훨훨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달린다, 달리고 싶어진다. 사랑하는 사람만 남는다는 스스로의 맹신 그것도 찬란한 믿음이 아니더냐.

 

 

출처=경제매거진 인사이트 코리아(Insight Korea)' 20147월호

=권동철 전문위원, 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