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화가 한경자| 향기 풍성한 사유의 공간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6. 26. 00:07

 

 사유의 공간II-바람결, 130.3×194cm, mixed media 2010

 

 

 

조용한 객석. 무대 막이 오르고 음악이 흐른다. “아름다운 꽃이 피네. 쾌락의 도취됨을 위해/시간을 보내자, 마시자/달콤한 전율을 위해/이 눈빛이 마음을 관통하도록베르디 오페라 춘희(라 트라비아타)’1축배의 노래일부다.

 

뒤마 피스가 그의 연인 마리 뒤프레시의 죽음으로 이루지 못한 사랑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 원작으로 사교계의 여인인 그녀가 한 달 중 25일은 흰 동백꽃을, 5일간은 붉은 동백을 가슴에 달았다고 한다. 소설 원제는 동백꽃을 든 여인이다.

 

이 비련의 사랑 한가운데 피어난 꽃처럼, 그 꽃은 겨울 칼바람에 흔들리며 더욱 붉게 피어오르는 정열의 화신인가. 속으론 아리고 남모르게 손을 오므려 참아야 할 만큼 고독의 시간을 이겨내며 흐트러짐 없이 신비로움을 간직한 그 도도한 자존심을, 꽃의 이름으로 동백은 폭풍한설에 피어나는가.

 

때가되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의 놀라운 생명력. 꽃이 전하는 새롭고도 풍성한 용기와 감동은 무채색 겨울 들판, 바다 언덕에도 피어오름으로써 자연에의 경외감을 일깨운다.

 

 

 

사유의 공간II-바람결, 130.3×194cm, mixed media 2010

 

 

 

희망의 사유 날개 펼치다  

자연에서 느끼는 공기, 따스한 느낌, 햇빛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촉감으로 느끼는 것을 이미지화해서 꽃이지만 감정을 이입해 작업하기 때문으로 꽃이라는 평범하고도 다소 단조로워 보이는 소재를 재해석해 꽃향기 풍성한 자연의 본성을 투명하게 펼쳐놓고 있다.(작가노트)

 

화면은 저마다 색들의 첨예한 대비적 구성이지만 한편으론 뜻밖에도 몽환적인 효과까지 곁들인다. 촉각으로까지 건져 올린 싱그러운 꽃의 생명력은 고요하지만 우리들 마음 깊은 곳 흐르는 강()을 만드는데 여기엔 이들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의 흐름을 틔어놓은 여백이 호흡하고 있다.

 

무엇보다 변화무쌍한 필치와 번지기 효과 등이 대상의 생명력을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그리다 만 듯한 어눌함을 연출하는 여유까지 엿보인다.”(이재언 미술평론가) 이처럼 그녀의 작품세계가 다양한 미감적 효과를 갖는 것도 바로 이에 기인하는데 이러한 화면은 사유(思惟)의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열어놓고 있다.

 

겨울나무를 가볍게 흔드는 새 날갯짓이 유일한 움직임인 한적한 바닷가. 바람결에 부유(浮遊)하던 씨앗 하나가 양지바른 대지에 내린다. 이 씨앗 하나를 부른 땅은, 맑은 성품으로 자라도록 아이의 마음을 닦아 준 모성(母性)의 본능처럼 겨울 꽃 옆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씨앗은 비로소 희망을 꿈꾼다.

 

그곳에 이르는 길에서 거상(巨象)의 자결을 목도한 사람도 있고 민들레 씨앗의 행방을 좇으면서 온 사람도 있다. (중략) 거상의 자결을 다만 덩치 큰 구경거리로밖에는 느끼지 못한 바보도 있을 것이며 봄 들판에 부유하는 민들레 씨앗 속에서 영원을 본 사람도 있다.”(최인훈 광장서문 중에서)

 

 

 

사유의 공간II-부유, 91×72.7cm, mixed media 2010

 

 

 

꽃의 원형과 본질 그리고 자연성

붓으로 화면을 칠하고, 칠해진 화면을 긁어내기도 하는데 두텁게 덧그린 색 면의 표면에 미세 균열 효과가 생기기도 한다. 물감을 흩뿌리고, 선을 긋고, 붓 끝으로 화면을 튕겨내는 등의 즉흥성도 어우러진다.

 

그의 꽃은 대상에 대한 감각적 닮은꼴을 통해서는 도달할 수 없는 꽃의 본성이나 자연의 본성을 암시하게 해준다. 그러니까 작가의 그림에서 꽃은 궁극적으론 대상의 감각적 표면현상을 넘어선 꽃의 원형, 꽃의 본질 그리고 자연성을 지향하는 계기인 것이다.”(고충환 미술평론가)

 

화려하고도 신비감 넘치는 생생한 색조의 구사에는 색채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는 작가의 자심감이 더해 화면은 생동감이 넘친다. 이 점은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한 송이 꽃이 그 자체로 이미 최고이듯이 그렇게 되기 위해 작은 것들의 타협에 편승하지 않고 사유의 공존이 바람결에 꿈을 공유하고 희망과 영원의 전령사이기를 바란다. 참다운 아름다움은 소리내어 내색하지 않아도 잔잔히 드러나는 법이다. 내면을 더욱 다지는 무심(無心)을 기대해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출처=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2010129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