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일본이 한국에서 만든 최초의 계획도시 진해(鎭海)와 함께 건축된 ‘흑백다방’은 중원로타리(백구로 57번지)에 있는 2층 목조가옥이다. 흑백다방역사는 그 전신인 ‘칼멘다방’에서부터 시작된다. 칼멘다방은 전후(戰後) 경남에 귀향하거나 피난 온 다방면의 예술인들이 거처 가게 되면서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는 진해현대예술의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2년 친구 이병걸로부터 흑백다방을 인수한 유택렬은 1963년에 이사해 3월23일 간판을 새로 올리고 신장개업한다. ‘흑백’이라는 이름은 유택렬이 다방을 인수하기 전인 1959년 혹은 그 이전부터 이미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업종은 다방이었지만 음악감상실에 가까웠다.
유택렬은 다른 예술분야에도 조예가 두루 있었는데 특히 바이올린연주가 수준급이었다. 베토벤과 스트라빈스키를 좋아하는 등 클래식 음악에 해박했던 그는 당시 최신 LP레코드를 공수해 수준 높은 음악감상이 가능한 공간으로 운영했다. 덕분에 예술가들과 음악애호가들이 흑백다방에 끊임없이 드나들었고 해군과 일반인들에게 특별한 만남의 장소였다. 특히 1990년대 초까지 그렇다 할 문화공간이 없었던 진해에서 흑백다방은 그야말로 독보적 존재로, 예술인들에게는 창작과 예술교류의 장으로 갤러리, 연주회장, 소극장 등 다양한 예술을 선보이는 복합문화공간이었다.
“1999년 유택렬이 타계하자 그의 딸 피아니스트 유경아가 본격적으로 흑백다방을 이어받아 실내악 공연과 연극이 있는 다목적소극장기능을 갖춘 문화공간으로 바꿔 나갔다. 2011년에는 지역예술가들과 시민단체가 ‘흑백운영협의회’를 결성하고 ‘문화공간 흑백’으로 명칭을 변경해 흑백다방의 명망을 이어갔다. 2013년 ‘창원시 근대건조물 4호 흑백다방’으로 지정된 후, 2021년에는 국가등록문화재가 되었다. 2020년 유경아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2023년 창원시가 흑백다방을 인수하였고, 현재 문화예술관련 공간으로 준비 중이다.<유택렬과 흑백다방 친구들 전시도록, 경남도립미술관, 2024.>”
한편 이전전시 공간 ‘흑백다다방방(黑白跢多幇坊)’은 열린 공간을 지향했던 흑백다방의 정신을 이어받아 전시기간동안 예술문화 활동에 한 해 다목적, 다용도의 복합공간으로 개방, 운영한다.
◇미술과 음악 흑백다방과 진해예술대부
“흑백다방에 고전 아주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유택렬 화백이 직접 바이올린 연주를 하면서 아주 음악과 미술의 결합, 융합이죠. 또 시낭송, 시화전, 회화전 이렇게 미술과 음악의 융복합으로 이루어 나갔다하는 그런 의미에서, 진해미술의 대부이지만 또 흑백다방을 통해서 군항제의 미술전람회를 흑백다방에서 했고, 또 1980년도에는 진해예총회장까지 하면서 진해예술의 대부로서 이름을 남겼습니다.<황원철>”
◇진해문화예술계 중심 흑백다방풍경
“당시 진해에 흑백다방을 빼고 다른 다방은 이야기는 못하는 거지. 그리고 클래식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는 곳은 유일했습니다. 유택렬 선생님이 원체 음악에 해박했으니까 거기 가서 모르던 클래식 음악에 심취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 흑백다방을 중심으로 새로운 하나의 문화지요. 문화가 형성되고 특히 옛날에 진해군항제 할 때쯤 되면요.
흑백다방에 대한 소문은 좀 들어봤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때만 해도 흑백다방이 진해의 가장 중심이었고, 문화예술계 중심이었고, 일반인들이 한 번은 가봤으면 하는 곳이었고, 해군 장교들이 반드시 들리는 곳이었고, 그런 게 초창기 흑백의 가장 괜찮았던 풍경이었죠.<김미윤>”
◇이중섭, 한묵, 전혁림, 김종식, 박석원 등 흑백다방의 예술가들
유택렬이 진해에 정착한 1953년부터 칼멘다방이자 흑백다방에서 그가 만나고 교우한 예술가는 셀 수 없이 많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유택렬의 친구이자 흑백다방예술가들은 유택렬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데 영향을 준 인물들이자 흑백다방을 매개로 왕래하던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았던 동료이자 스승이며 제자이기도 하다.
이번전시 ‘유택렬의 친구들, 흑백다방의 예술가들’에 소개하는 예술가들은 다음과 같다. 유택렬이 미술에 입문하도록 이끌고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도운 육촌형 유강열(1920~1976), 금강산스케치여행 때 만나 진해에서 다시 재회한 이중섭(1916~1956), 마찬가지로 금강산스케치여행 이후 월남해 재회하고 1990~91년 유택렬의 프랑스 방문 때마다 교우한 한묵(1914~2016)이 있다.
또 진해에서 1여 년간 동고동락하며 깊이 교우한 전혁림(1915~2010), 진해중학교에 재직하며 유택렬과 함께 진해미술협회를 이끌었던 김종식(1918~1988), 진해군항제와 진해미협 등 활동을 함께한 흑백다방단골 최운(1921~1989), 진해해군에서 만난 강신석(1916~1994)이다.
이와 함께 유택렬과 시화전 및 연극 활동도 함께했던 문인이자 연극인 김수돈(1917~1966), 흑백다방에서 시사전을 했던 문인이자 극작가 정진업(1916~1983), 통영과 진해, 마산을 오가며 칼멘다방 시절부터 흑백다방을 종종 찾았던 시인 김춘수(1922~2004), 해군에서 만나 한국예총 진해시지부를 함께 이끈 황선하(1931~2001)가 있다.
여기에 유치환, 김춘수, 전혁림 등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창립한 윤이상(1917~1995), 흑백다방에서 최초로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열었던 작곡가이자 영화음악감독 정윤주(1918~1997), 1981년 서울 한국문예진흥원미술회관에서 ‘유택렬 작품전’개최 때 첫 제자이자 서울전시를 적극적으로 도운 추상조각가 박석원(1942~) 등 총14인의 예술가들이다.
◇유택렬‥1981년 서울문예진흥원미술회관 초대전과 제자 박석원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해도 그것(중앙화단)하고 나는 무관하다. 예술이라는 거는 장소성이라고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디에 있느냐 그것이 중요한 거다. 항상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거기 가서 나를 보여준다는 거는 슬픈 작위에 해당하는 일이기 때문에 별로 관심을 안 갖고 있다.
그리고 또 그런 화단의 일들에 자신을 던질 수 없다는 그런 생각을 항상 가지고 왔어요. 왜냐하면 그 속에 들어가면 자기라고 하는 존재가 약해진다는 거예요. 고집스러운 자기 생각이 여러 사람들을 만남으로 해서 무뎌지고 그래서 비교를 통해서 약해지고 그러면 곤란하다는 것이지요.
그런 생각을, 우리는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그런 짐작을 하게 됐는데 마침 그 80년도 쯤 고향에서 만났을 때 그 이야기를 했어요. ‘내가 서울 가서 전람회를 하겠다면 할 수 있겠느냐’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했어요. 그때는 굉장히 아주 특이하게 생각했는데, 그동안 쭉 거부했었는데 그 얘기를 했는데 나도 당당하게 표현 할 수 있겠다하는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올라와서 바로 이제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이죠. 미술관은 아니지만, 일반 갤러리나 미술관하고 한 중간 정도 되는 상당히 공간도 좋고, 그때는 미술회관에서 전시한다는 걸 굉장히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그럴 때였어요. 초기시절에는요.
그 장소면 충분히 이 분의 종합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가능하겠구나. 1층 2층이 다 넓어요. 그래서 관장하고 협의해가지고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초대전으로 진행하자. 그래서 협의해가지고 날짜도 정하고 모든 게 이루어 졌어요. 그래서 통보를 하게 되고 난 기쁜 마음으로 진행을 맡아서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꼭 하고 싶다고 했던 해외전도, 그것도 꽤 시간이 지난 후, 7~8년 이후에 파리에 연결된 전시를 했는데, 난 그게 81년 전시가 계기가 되지 않았나. 그리고 거기서부터 용기를 얻고 더욱 열심히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박석원>”
[글=권동철, 12월9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