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발자취(年代記)

[유택렬 탄생 100주년 기념전-①]한국적 미의식 한국추상미술의 역사[유택렬과 흑백다방 친구들, 경남도립미술관,2024년 11월1~2025년 2월16일,Yoo Tackyul,劉澤烈,함경남도 북청출신화가,권동철.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4. 12. 5. 21:16

(왼쪽 위, 아래)제1전시실 입구 전시안내문과 경남도립미술관 외관에 설치된 전시 플래카드. 사진=권동철. (오른쪽)작업실에서 유택렬 작가. 사진제공=경남도립미술관.

 

유택렬 탄생 100주년 기념 ‘유택렬과 흑백다방 친구들(YOO Tackyul:The Black & White Tea Room and Artist’s companions)’전시가 경남 창원시 경남도립미술관 1~2층 전시실에서 지난 11월1일 오픈, 오는 2025년 2월16일까지 미술애호가들의 폭발적 관심을 끌며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화가 유택렬(Yoo Tackyul, 劉澤烈, 1924~1999)은 함경남도 북청군 하거서면에서 아버지 유병추 어머니 이석기춘 사이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9년 북청공립농업학교에 입학했다. 1944년 4월 강제징용 1기로 해병단에 입단하고 1945년 8월 진해해군기지창에서 해방을 맞는다. 그해 12월 북청으로 귀향하여 1946년 북청제2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한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12월에 어머니, 여동생 유영희, 남동생 유봉렬을 북에 두고 내려와 평생 이산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1951~52년 경남거제시 피난민 수용소에 거주하며 부두노동과 미군군복세탁소 일을 하게 된다. 1953년 경남진해에 정착 후 타계한 1999년까지 그곳을 중심으로 예술 활동을 펼쳤다.

 

최옥경 학예연구사는 “1950년대 이후 경남예술의 흐름을 살피면서 교육자이자 문화운동가이기도 했던 유택렬의 전방위적 활동을 총체적으로 접근하여 유택렬 삶과 회화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기념전”이라고 밝혔다.

 

한편 ‘유택렬 탄생 100주년 기념전’ 보도와 관련, 화백의 생애와 흑백다방 친구들 그리고 작품세계를 △1950년대 중반 앵포르멜~60년대 초 △1961~70년대 중반 △1970년대 중반~1990년대 후반까지로 나누어 총5회 시리즈로 기획했다.

 

◇한국토속신앙과 전통정신의 표출

경남의 선구적 추상화가 유택렬 화백 미술세계는 1950년대 후반 한국추상미술의 궤적과 함께한다. 한국전통의식과 연계되는 독자적인 ‘한국적추상’을 일궈내고자 고군분투하였다.

 

방법론으로 동서양미술기법들을 다양하게 실험했고, 돌멘(Dolmen), 암각화, 단청, 살(煞), 제(祭), 부적과 같은 명제에서 드러나듯 샤머니즘과 불교미술, 원시시대의 조형요소들을 도입하였다. 종교적, 주술적 행위의 흔적에서 한국미술의 기원이자 한국적 미를 찾아내려 했다.

 

이러한 작업방향은 그가 경험하고 기억하는 한국토속신앙과 고향 북청문화가 토대가 된다. 한국근현대사의 굴곡과 함께 얼룩진 자신의 삶이 작업에 있어서 보다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질문들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김미윤 시인, 미술평론가/경남도립미술관(GAM)-유택렬 전시영상아카이브, 사진=권동철.

 

◇김미윤‥“북청에 대한 그리움이 어딘가에는 스며있다”

“유택렬 선생님이 다녔던 북청농업학교 설립자가 참 묘합니다. 고종의 명을 받아가지고 헤이그밀사로 간 사람이 이상설, 이준, 이위종이죠. 거기에 들어있는 이준 선생, 대한민국의 최초의 변호사 이준 선생이 고종의 명을 받아서 세운 국립농고입니다. 거기에서 공부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부는 제대로 한 거죠.

 

유택렬 선생의 윗대가 진사집안이었으니까, 유택렬 선생님 집은 잘 살았어요. 그런 유복한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결국 음악에 심취하기도 하고, 마음껏 공도 차기도 하고, 그러다가 결국 일제 때 징용으로 진해로 온단 말이죠. 그리고 진해로 왔다가, 나중에 해방이 되니까 있을 데가 없어서 부산을 잠시 갔다가, 일제 때 징용이 된 진해로 와서 정착하는 게 좋겠구나. 결국 이리로 온 거예요. 군무원으로 오래 계셨으니까.

 

그런 연유로 해서 진해로 오게 됐는데, 결국 그분의 그림이랄까 그런 건 북청에 대한 그리움, 본인이 평생 물고 늘어졌던 부적에 관한 거, 그게 그 분의 주된 것 이예요. 그림을 그리더라도 유택렬 선생님의 그림 속에는 북청에 대한 그리움이 늘 스며있다고 보면 됩니다. 어딘가에는 스며있어요. 좀 안됐죠.

 

어떻게 보면 그냥 대담하게 보여도, 혼자 돌아서면 쓸쓸한 표정을 보이고, 제가 제작할 때 2층에 올라가면 그림 제작하는 데가 있어요. ‘내가 여기서 그림을 그릴 때는 가족 생각을 참 많이 한다.’ 그런 얘기할 때 가슴이 참 뭉클했어요. 유 선생님은 사람이 참 그리운 사람 이예요.<김미윤>”

 

[글=권동철, 12월3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