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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안석준‥유현한 필치 순리의 한국미[펜 담채화,Pen Line & Watercolor,安碩俊,Ahn Seok Joon,안석준 화백,안석준 작가]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4. 11. 5. 19:58

구정리 느티나무, 34.5×70㎝ 종이에 마루펜, 잉크, 수채물감, 2023.

 

“조선시대 중 실경산수화가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주문·감상·수장된 것은 이것이 유학적인 사상과 문화, 가치를 담아낸 그림이기 때문이다.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추구한 사상이자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든 문화로서의 유학(儒學)은 궁중과 지식인 선비계층이 선호한 실경산수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1)

 

가야산이 품은 해인사(海印寺)가는 길목 구정리. 웅장한 오케스트라연주처럼 오색단풍으로 물들어가는 500년 된 느티나무 아래서 생의 무거운 짐을 풀어놓고 이야기를 건넨다. 밑에서 부터 점점 물들어가는 11월 오후 짙어가는 활엽이, 아득하기만 하여 덧없이 흘러가는 거라고….

 

(왼쪽)청량사 가는 길, 44.5×31㎝ 종이에 마루펜, 잉크, 수채물감, 2023. (오른쪽)=해운정(海雲亭), 72×41㎝ 종이에 마루펜, 잉크, 수채물감, 2024.

 

물속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강물에 세속의 업(業)을 씻어 흘려보낸다. 물길을 건너 정토(淨土)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장엄의 암벽과 마주하며 순간 얼어붙는다. 경북봉화 청량사(淸凉寺)이다. 굴곡진 세월 깊게 패인 주름을 드러낸 저 깎아지른 바위를 조심스레 지나다 발갛게 익은 고엽이 회포(懷抱)를 풀어놓듯 발등으로 툭툭 떨어져 나뒹굴었다. 모두가 찰나이런가. 불현 듯 잊어진 그리움이 떠오르는, 아아! 연기(緣起)여.

 

“이러한 웅장과 중압의 바위를 보면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암벽아래를 걸어가는 나그네, 진한인생사를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2)

 

방향을 틀어 동해로 달리다 강릉에 이른다. 그곳 해운정(海雲亭) 편액은 조선후기성리학자 송시열 글씨이다. 안석준 작가는 붓을 꺼내 권위가 배어나오는 조선시대 의궤(儀軌)그림방식을 차용한다. 장면이 연속되는 세로구성으로 본당에 들어가 올려다 본 풍경이니 대문과 본당에서 보는 시선이 다르다. 여기에 소나무를 살짝 과장해 그렸는데 안정적 구도를 위한 숙달된 경지의 유현(幽玄)한 필치가 대단히 감각적이다.

 

청량적벽(淸凉赤壁), 32×71㎝ 종이에 마루펜, 잉크, 수채물감, 2023.

 

◇펜 담채화로 그려낸 명징한 풍경

안석준 회화는 철저하게 발품을 판 현장사생에서 체득된 실경산수화다. 우리산하 각별한 고유성을 세밀한 필선의 생생한 펜 담채화(Pen Line & Watercolor)로 그려낸다. 화면은 법고창신 정신을 바탕으로 가장 한국적인 향토성의 현대미로 표출된다.

 

자연과 융화되는 몰아의 지경에서 직관으로 그려낸 사의(寫意)의 자연주의회화가 안석준 화의(畫意)이기 때문이다. 하여 싱그러운 대기의 절경을 평형의 감정으로 거니는 듯 자연합일의 독자적 미의식세계로 안내한다. 그것은 현대인에게 청량한 시각문화로 주목받는 것의 배경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겸재 정선이나 단원 김홍도의 그림 속 자연과 인물은 당대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 그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면서 삶의 의미를 자연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내가 산수화를 그리는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까 생각한다.3)

 

[참고문헌]

1=조선 후기 진경산수화, 박은순 지음, 돌베개.

2~3=안석준 작가, 江山無盡(강산무진), 2024.

 

[글=권동철, 11월5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