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하고 가지런하고 건강하고 둥근 것은 필(筆)의 네 가지 덕이다.1)”
여명의 시각. 전시장에 들어서자 쉰 새벽 깨우는 범종(梵鐘)의 울림이 묘한 긴장감으로 다가와 공명되었다. 연극의 1막(幕)이 오르며 서서히 밝아오듯, 높은 천장에서 비춰지는 옅은 불빛아래 승전을 알리는 혹은 만장(輓章)이 바람의 소리에, 펄럭였다.
천위로 그어진 먹빛, 천진한 유희의 자국에 종소리가 박히고 하나 둘 기억의 파편들이 모래알처럼 쌓이며 어떤 기호학으로 드러났다. 이윽고 단비 내린다. 모래밭에 새겨지는 발자국으로 마음의 심층이 물처럼 배어나오고 심호흡의 맥박에 또렷해지는 저 획(劃)의 기운 속으로 오색찬란한 새 아침이 열리고 있었다.
◇기운생동의 음양에너지
선(線)의 행로를 따라가다 노란수선화 만발한 낙원에서 서법(書法)의 정신과 조우한다. 간간이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정적을 흔들 뿐 고요하다. 그러나 대(大) 붓 지나가는, 넓게 포치(鋪置)한 모래사장에 비춰지는 영상은 공간감의 확장을 입히고 물은 빼곡한 욕망의 언어들을 품는 관용으로 스며들었다.
마침내 스스로 열린 물길에 신선하고 푸르른 물줄기가 샘물처럼 솟아났다. 누군가 ‘생명의 강’이라 외쳤다. 물길을 훑고 순식간에 대지에 닿은 거대한 한줄기 획(劃)이 용트림하듯 새겨졌다. 굵고 부드럽게, 직선과 곡선이 만나는 접점에서 음양에너지가 거침없이 기운생동의 밸런스를 드러냈다.
“붓의 가벼운 것은 양(陽)이 되고 무거운 것은 음(陰)이 된다. 무릇 글자 중에 두 개의 직획(直畫)이 있는 것은 왼편 획은 가늘고 바른편의 획은 굵어야 하며 글자 속의 주(柱)는 굵어야 하고 나머지는 모두 가늘어야 한다. 이는 음양을 나눈 법이다.2)”
◇필연의 자국 그 자기성(自己性)의 회귀
포말의 자국이 몸에 닿는다. 헤진 상처를 부드럽게 치유하고 붓은 일필휘지로 휘갈겨진다. 마음의 처음과 해후하는 넋풀이의 용필(用筆). 생채기는 아물어가고 은빛으로 차오르는 물결 위 빼곡한 고백들에 아침햇살이 마구 쏟아졌다.
이윽고 갈증을 날리는 청청한 샘물 맛처럼, 흠뻑 먹을 빨아들인 모필이 묵흔을 새긴다. 필연(筆硯)이 필연(必然)의 자국을 그려내는 업장의 소멸에 입김은 형체 없이 사라져 가는데….
“‘나’는, 의식이 있기 전에 거기 ‘있었던 것’으로서 항상 주어져 있는 동시에, 조금씩 드러내 보여야 하는 깊이를 가진 것으로서 주어져 있다. 그리하여 ‘자아’는 하나의 초월적 존재자가 아니라 인간세계의 현실존재자로서 의식에 나타난다.‥어떤 조건 속에서 자기성(ipséité)이 초월적 현상으로서 ‘자아’의 나타남을 허용하는 것은, 자신의 근본적인 자기성에서의 의식이다.3)”
◇영상·설치·한국서법예술과 문인화적 문기
제이영 작품에 흐르는 사유는 조선후기 문인화적 문기(文氣)가 강하게 내재되어 회귀(回歸)한다. 영상과 설치 그리고 한국서법예술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전개된 ‘Like-150mm: Eternity of Repetition(반복의 영속)’의 화두는 서화(書畫)적 강줄기를 통해 저 한국미의 혼(魂)을 품은 필세(筆勢)의 미의식과 다름이 없다. 이번전시는 제이영 작가에게 새로운 전형(典型)의 전시로 기록될 것이다.
“이슬방울을 굴려 가며 밭 속으로 걷노라. 길 넘는 풀과 밭 아래 풀이 고스란히 나를 세례(洗禮)하노라. 지저귀는 뭇새 아직도 숲속에서 떠나지 못했노라. 닭의 소리 기운찰수록 하늘 봇장 위에 조각달은 희어가노라. 별! 새벽별!‥그리고 끝으로 하나는 모래와 시내가 닿은 가름 사이에 법열(法悅) 속에 자차(諮嗟, 탄식)하고 있는 백의(白衣)의 일존재(一存在)로다.4)”
[참고문헌]
1)~2)=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 ‘완당전집 제8권 잡지(雜識)’, 한국고전번역원 신호열(譯) 1988.
3)=존재와 무, 자기성(自己性)의 회로 中, 장 폴 샤르트르(Jean-Paul Sartre) 지음, 정소성 옮김, 동서문화사.
4)=고유섭 평전, 고유섭 산문 中, 이원규 지음, 한길사.
[글=권동철, 8월31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