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세계가 진실로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한 덩어리의 모습(一合相)일 것인데….1)”
저 무량한 우주질서를 끌어안은 허공중 극사실화 ‘몽중호(夢中壺)’가 떠 있다. 무문(無紋)이 빚는 넉넉한 젖빛양감 둥그스름한 선이 천연스러움으로 방실거린다. 겹겹 인연법의 얼룩이 아렴풋한, 미묘하게 어긋나 있는 모순의 밸런스. 그 결속의 호흡에 흐르는 오오 시간의 무게여!
◇한국인의 마음 그 존재론적 시각문화
화면은 가장 한국적 조형미를 꽃 피웠던 조선후기 ‘백자 달항아리(白瓷壺)’가 작업의 모티브이다. 마치 하나의 장면처럼 저 광대무변에 띄워 다의적 해설의 맛을 열어놓아 장자의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새 붕(鵬)이로 변하여 남쪽바다 천지(天池)로 날아간다는 기막힌 스토리와 오버랩 된다.
“붕이 남쪽바다로 움직여서 가면 파도가 3천 리(里)나 튄다.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면서 위로 9만 리나 올라가서 여섯 달을 가서는 멈춘다.(鵬之徒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摶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2)”
고영훈 화백은 “나의 달항아리 ‘몽중호’는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결정되어지는 것이 마음에 의해서이듯 그 통로이자 과정의 결정체인 ‘그 마음’의 그림을 대변하는 것과 같으리라. “제주의 자연과 인문학적 공간 거기서 나타나는 우리네 삶의 순수가 유년의 기억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것은 제주인과 어머니의 사랑 더 나아가 가장 한국적 풍토성의 미감에 대한 추적으로 바로 내 작업의식의 원천이다.3)”
허공에 두둥실 떠 있는 생동의 달항아리와 여백미가 선사하는 염원의 공간은 심도의 조형세계를 담보해 내며 일루전현상학의 공간감을 불어넣는다. 유·불·도교 등 복합적우주관과 검박한 품격의 맥(脈)을 이어온 미의식이 내재된 ‘몽중호’는 혼(魂)의 기운이 흐르는 한국인의 존재론적 정체성을 아우른다. 동시에 천인합일우주관의 정취를 품은 한국현대미술의 새로운 시각문화를 제시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순백미감이 껴안은 비애감 아 수선화
일체 화사첨족(畫蛇添足)을 배제한 담백한 여백(餘白)위로 생의 비애감을 껴안은 천엽(千葉) 꽃잎이 천진스럽게 해풍에 드러눕는다! “수선화는 과연 천하에 큰 구경거리입니다.‥그 꽃은 정월 그믐, 2월 초에 피어서 3월에 이르러서는 산과 들, 밭두둑 사이가 마치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듯, 또는 흰 눈이 광대하게 쌓여 있는 듯합니다.4)”
[참고문헌]
1)禪으로 읽는 금강경(金剛經), 김태완 번역 및 설법, 침묵의 향기.
2)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편, 송영배 역주, 비봉출판사.
3)고영훈 작가, 제주와 어머니 그리고 한국미 여정, 2024.
4)추사 김정희 ‘완당전집 제3권, 서독(書牘)’, 한국고전번역원 임정기 譯, 1995.
[글=권동철, 10월5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