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연작-서로의 존재 균형 있게 다스리는 원만함으로 승화
곡선. 이를테면 뭉게구름과 여인의 풍만한 엉덩이, 가슴 또는 먹음직스런 복숭아와 사과, 유선형의 물고기…. 이들은 인간의 보편적 욕망의 메타포로서 아주 단순하고도 쉽게 우리에게 다가와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본질은, 극도로 단순화된 대상이 극히 제한된 수단으로의 표현인가. 김종태 작가의 ‘꿈’ 시리즈 화면은 농축된 형태가 투명한 색채를 입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가 선택하는 자연의 모티브들은 염색미학을 관통하여 일관된 성적 몽상으로 엮어져 하트에 꽂힌다.
사과와 하트
사과꽃. 아이보리 하이얀 꽃잎에 연한 핑크색이 수줍은 듯 볼그레하게 앉아 있다. 푸른 공 같은 화면의 파란 껍질 안 붉은 속살. 이브의 과일, 사과다. 곡선적인 형태의 유사성으로 인해 일관된 성적 몽상으로 엮어져 있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본래의 순수하고도 원시적인 물감 들이기로 회귀할 것을 제안하며 그래서 그림을 만나 귀가 열리기를”이라고 작가 노트에 적고 있다.
디지털이 무서운 속도로 세상을 지배하는 금세기.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과 세계의 이해. 그래서 아날로그스(analogous)의 진공관 앰프를 ‘소리’의 대명사로 일컫는가. 그러한 즈음 남자 육십이면 왜 다시 하트에 꽂힐까. 헤어져 있어도 저기 멀리서 멋있는 소리가 다가오는 듯….
깊숙한 염색
그는 전통적 염색기법인 바틱이나 실크 스크린 등을 수용하면서도 그만의 독특한 재료에 대한 해석과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방염성이 약한 밀가루 반죽을 사용하여 섬유 조직으로 침투하려고 하는 염료 본래의 성질을 어느 정도 내버려 둔다.
밀가루 반죽이 잘 마른 부분은 밑그림의 윤곽이 선명하고 그렇지 못한 부분은 그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우연성의 효과를 나타낸다. 그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번짐이 주는 회화적 표현 가능성을 심화시키기 위하여 다루기 힘든 두툼한 목면(木綿)을 소재로 쓴다.
이렇게 함으로써 얇은 천에서 느낄 수 없는 오묘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러한 재료 표면의 느낌인 텍스처와 염료 간의 유기작용을 작가는 ‘깊숙한 염색’이라고 불렀다.
‘꿈’의 마음
화면에는 순색들이 오묘하게 펼쳐져 있다. 아침은 늘 신세계이듯 뭔가가 잉태할 것 같은 어떤 예감이 휘익 어른거린다. 그래서 다시 바라보면 화면은 ‘꿈’처럼 간결하다. 사과와 복숭아 그리고 물기 털어내는 물고기 한 마리, 혹은 노을의 붉은 기운이 아직 채 가시기 전에 서둘러 떠오른 초생달 만이다. 그럼에도 작품 속 두 성향은 상호 보완의 관계로 승화되고 있다.
그 기저에 흐르는 고요함의 본질은 생래적인 원만함이다. 곧 긍정이다. 조각가인 오상일 홍익대 교수는 “그의 작품을 이루는 두 가지 축은 아방가르드 정신과 전통의 계승이라는 두 성향으로 발현된다. 그리고 작가는 이 모순관계를 변증법적 통일로 작품화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썼다. 상호 충돌과 모순적 갈등의 고통 속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균형 있게 다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행복. 화면이 간결한 것은 서로가 낮추려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순색들이 맘 놓고 어우러진다. 그것은 연작 ‘꿈’과 지금의 ‘당신’ 마음이다.
△출처=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 (2010년 6월10일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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