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대화 90.9×60.6cm mixed media on canvas 2010
‘나무-대화’ 연작… 인생의 희로애락 형상화 ‘숲’으로 초대
작은 땀방울. 휘이익 한 마리 작은 새가 지나지 않았으면 낙엽에 앉아 하염없이 저녁을 맞을 뻔했다. 천 년 세월에도 아랑곳없이 제 몫을 이어오는 느티나무 향이 코끝으로 스며드는 것만 같은 부석사(浮石寺).
나무 몸통이 불룩한 본래의 성질을 그대로 살린 미학의 극치라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따스한 온기, 감촉이 미풍처럼 부드럽다. 그리고 이 중심을 향해 무한소로 수축되며 동시에 무한대로 팽창해 나가는 모습의 황금 나선(Golden Spiral).
자연을 그대로 살린 절제된 아름다움의 곡선이 함께 하는 최고(最古)의 목조건축을 세우던 선인들의 나무에 대한 깊은 통찰이 생애를 증거하고 있다.
나무-대화 60.6×60.6cm mixed media on canvas 2010.
나무가 건네는 ‘위안·경이로움’ 창에
울트라마린 블루(Ultramarine blue) 짙푸른 강 언덕 미루나무 아래 동무 셋, 어린 새들의 놀이가 소곤소곤 정겹다. 화폭에는 마치 은밀히 눈으로 응시하는 연인처럼 나무를 매우 함축적이고 인상적으로 떠내어 나무 존재의 본질을 만나게 한다.
마치, 먼 먼 이전의 시간을 거슬러 손으로 물감과 여러 재료를 빚은 듯 촉촉한 물기의 나무를 올려놓고 있다. 그곳에는 사랑과 애수와 바람과 빛깔 고운 나뭇잎들이 다독여주는 따뜻함이 펼쳐져 있다.
직립으로 서 있는 하나, 둘 몇 그루 나무. 두툼한 질료를 긁거나 파내서 생긴 상처의 자연스런 선들이 조화로운 색감으로 나무둥치를 이루어 시선을 자꾸만 나무의 마음으로 이끈다.
저마다 개성으로 기른 고운 정성이 모여 조화를 이룬 풍경을 잔잔히 바라본다. 맘 속 저 깊은 곳에서 ‘나’를 흔들어 깨우는 나무가 건네주는 위안과 경이로움. “나무는 대지의 모든 것들을 빨아올려 단단하게 응축시킨 결정으로 빛난다.
나무-대화 162.1×130cm mixed media on canvas 2008.
나무는 스스로 나무다! 오랜 시간이 엉긴 나무껍질에 귀를 기울이면 깊은 대지의 내밀한 소리가 길어 올려진다.”(박영택 미술평론가)
강물이 흐른다. 길을 열어놓은 대지의 포용력 그 건강한 줄기로 물이 스며든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아름드리 커지고 그 탄탄한 결의 에너지가 된 물의 길. 나무로 가는 물, 물을 당기는 나무의 소망이 엮어내는 생명의 하모니. 아아, 천년을 살아 있는 연륜(年輪)이여. 이제 여인의 치맛자락처럼 부드러이 나부끼는 물길이 마음의 창(窓)으로 들어와 번진다.
마침내 허물어지는 경계의 벽. 겸손한 무채색 나무가 경외와 상념의 아우라(aura)를 불러일으킨다. 새도 나무도 ‘나’도 하나의 근원적 정신성에서 자라났다는 깨달음의 순간. 미루나무의 감촉이며 종달새의 노래며 아이에서 어른이 된 시간의 자취가 자연의 품에서 함께였다는….
이러한 나무는 “작가의 삶과 세계를 이해하고 사유하는 키워드인 동시에 하나의 상징이고 은유이자 자연계를 포괄하는 원형의 이미지로 스며들어 있기도 하다.”(박영택 미술평론가)
하찮은 사욕과 반목으로 얼룩진 인간사. 손으로 더듬으며 귀로 들으며 마음을 열어 교감한 작가와 나무와의 쌍방향 대화(conversation). 그것은 관용으로 포장된 무관심들을 녹여낸다.
아울러 내재된 안식을 찾고자 조금 조금씩 들어가면,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는 황톳빛 풍경에서 마음과 마음이 어우러져 사랑의 본질을 환원할 수 있는 낙원 같은 숲을 만난다.
바로 이 지점이 작가가 궁극적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아름다움, 하나의 근원으로 모아지는 대자연의 형상과 공존의 미학이다. 이러한 작가의 지난한 노력의 메모 하나.
“나뭇가지는 마음속에 넣어 살며시 감추어 보고 ‘헌 잎 줄께 새 잎 다오’.
새 잎 달아 형형색색으로 수놓으면 어느덧 이런저런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 나무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형상화한 따뜻한 나의 숲으로 ‘그대’를 초대하고 싶다!”
△출처=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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