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화가 모용수|동화적 몽상 해학적 감성 그 공감의 힘(모용수,모용수 작가,호랑이)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6. 2. 21:01

 

그 섬에 가고 싶다, 65×100oil on canvas, 2010

 

 

 

유년의 감성에서 건져 올린 보편의 서정 

 

계곡 잔설이 녹으면서 강물은 감청색으로 더욱 짙푸르렀다. 제비꽃, 산당화, 유채, 민들레. 싱그러운 향기를 봄바람에 실은 만개한 꽃들이 싱싱한 제 빛깔로 저녁을 맞이하고 있었다. 강물엔 어느새 둥그런 달그림자가 두둥실 떴다. 어느 봄날 짧은 하루의 아쉬움이 묻어날 그때까지도 새끼 호랑이 한 마리는 꽃밭을 기웃거렸다.

 

지난 밤, 부모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것질거리를 찾아 어슬렁거리며 마을로 내려왔다가 우는 아기 달래는 엄니의 호랑이와 곶감얘기를 듣고 혼비백산하였던 터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 강변에 이르렀는데 다음날까지 돌아오지 않은 친구를 찾아 나선 녀석이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야 발견한 것이다.

 

 

 

사랑, 90×90oil on canvas, 2010

 

 

한편 이른 아침, 화창한 날씨에 나들이를 나선 오리가족은 강둑으로 몸을 말리러 나오다 꽃밭을 서성거리는 호랑이를 진작부터 보았었다. 새끼 물오리가 용감하게 다가가 넋이 나간 호랑이에게 물었다. “왜 이리 덜덜 떨고 계신가요?” “으으응, 곶감이란 놈이 내 등에 붙어서 떼어내느라 밤새도록 여기까지 달려왔지.

 

아주 혼쭐이 났었어라는 풀죽은 목소리의 대답이었다. 그러자 눈가에 미묘한 웃음을 머금은 아기 오리는 !’ 거리며 콧방귀를 뀌고 휙 물길을 재빠르게 사르르 가르며 돌아가 버렸다.

 

그 후, 날이 저물어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새끼호랑이에게 그들의 섬에서 지켜보던 물오리 두 마리가 또 찾아가 말을 걸었다. “우린 이 동네에 사는 물오리 커플이야. 곧 머지않아 결혼할 거야. 너도 섬에 살고 싶지 않니?”라고 암놈이 나지막하게 뼈 있는 말을 건넸다.

 

 

 

나들이, 117.5×176oil on canvas, 2010

 

 

 

이때 아무 말도 못하고 얼떨떨하게 커다란 눈만 껌벅이는 호랑이에게 물오리는 속눈썹을 길게 내리깔면서 코맹맹이 소리로 또렷하게 한마디 더 보탰다. “너 오늘 대박인 줄 알어. 생전에 어디서 또 백조를 볼 수 있겠어!”

 

어머니가 보채는 아이를 토닥거리며 전래동화를 들려주노라면 이내 새근새근 잠이 들것 같은 화면. 아련한 동심(童心) 저편에서 길어 올린 기억과 상상의 편린들은 괜시리 혼자 있어도 빙긋 입가의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처럼 작가는 간결한 이미지와 원색 그리고 어눌한 듯 하지만 특유의 감칠맛 나는 풋풋한 서정을 흥미롭게 펼쳐놓고 있다. “은은하고 여린 것이 화사하고 예쁘지만 지나치게 진하지 않아 오히려 애잔하고, 지나치게 선연하지 않아 더욱 깊이와 감칠맛을 더하는 그런 정서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민족이 공유하고 있는 독특한 심미적 특질의 한 모양일 것이다.” (김상철 미술평론가)

 

작가노트에 풋풋하고 정감 있는 동화적 몽상과 해학적 감성에 공감하기를 희망한다고 적은 것처럼 유년의 소박하고도 풋풋한 상상과 감성에서 건져 올린 절절한 옛 이야기들은 현재의 를 재발견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게 한다. 바로 보편의 마음들 그 진원지를 항해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산다는 것에 속고, 쓸쓸한 마음에 기대고, 버림받음에 눈물져도 세상을 견뎌내는 힘이 아니겠는가.

 

 

출처=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