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산하 공생의 따사로운 속살
“초생 달이 귀신불같이 무서운 산골거리엔 처마 끝에 종이등의 불을 밝히고 쩌락쩌락 떡을 친다. 감자떡이다. 이젠 캄캄한 밤과 개울물 소리만이다.<향악(饗樂)-산중음2, 백석(白石)시집-사슴, 더스토리刊>”
엄동설한. 짓궂은 칼바람이 마른넝쿨사이를 할퀴듯 빠져나간다. 스스로를 낮추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보잘 것 없는 것의 겸허. 어머니 품 같은 따스한 기운을 나눔으로 주변생물들에 활력의 때를 도모할 수 있도록 맨 살로 온몸을 던진다. 넝쿨이다. 따스한 햇살을 껴안아 뒤덮여 엉켜진 듯 한 그 존재 없이 어찌 혹한겨울을 건너올 수 있었으랴. 그리고 마침내 피어올린 봄날의 생명들. 정결한 환희의 명자꽃잎, 오솔길 걸음을 멈추게 하는 조팝나무 하얀 꽃향기, 골골마다 피어난 개나리 담장….
◇넝쿨, 보잘 것 없는 것과의 인연
점(點)을 반복적으로 쌓아올린 화면은 풍성한 시각문화예술의 웅숭깊은 미감을 선사한다. 어두운 색감의 캔버스 바탕 위 7~8단계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밝은 채도를 만들어내는 부단한 집적(集積)은 기본적으로 굉장한 노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꽃과 넝쿨, 산봉우리 속살을 비추는 빛의 이동, 감상시선을 감안할 때 화의(畫意)의 고유성을 선명하게 전달하는 틀로써 점묘는 매우 유용한 기법일 것이다.
김대영 작가는 고향인 강원도 춘천주변 우리 산하(山河)의 향토성에서 공존의 시선을 포착한다. 이름 없는 민초들이 우국충정의 마음을 내어놓으면서 지켜온 백두대간골짝과 계곡물처럼 자연도 사람도 순환의 존재라는 그 담박한 인연을 중의적(重義的)으로 표현해낸다. 부연하면, 일제강점의 굴욕세월과 국토분단의 상처가 된 6.25전쟁의 상흔을 이겨내어 온 한민족저력의 끈기가 화폭에 스며있고 향토사의 정신성이 김대영 화법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과장된 격식과 뽐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본심을 나누는 자연의 정경을 통해 도시화의 현대인에게 애향의 정과 그리움의 공동체 유대라는, 한국인의 본원적 유전자(DNA)를 자극한다. 이를 통해 가장 한국적정체성을 제공하는 현대미(Contemporary Art)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김대영 화백은 이렇게 말했다. “눈여겨보고 소중히 기억해야 될 것들이 오늘도 우리 산천에 말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넝쿨’이라는 보잘 것 없는 메마른 가벼움에서 존재이유와 도리(道理)라는 자연계의 가르침을 새긴다. 푸름을 잃은 겨울넝쿨 사이 사뭇 찬란한 자아로 피어나는 꽃과 생명들을 통해 순환의미를 껴안아 볼 수 있는 자연관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글=권동철, 9월호 2022년, 인사이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