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식

[MMCA 이건희 컬렉션특별전 한국미술명작-(6)]김환기,金煥,基2021년 7월21~2022년 3월13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1전시실[MMCA Lee Kun-hee Collection Masterpieces of Korean Art:KIM Whanki]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2. 2. 8. 18:41

김환기 작품 전시전경. (정면)여인들과 항아리, 281.5×567㎝ 캔버스에 유채, 1950년대. 사진=권동철

 

 

김환기(金煥基,1913~1974)는 한국 추상화의 선구적 작가다. 1931년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1933부터 1936년까지 니혼대학(日本大學) 미술학부와 연구과에서 수학하였다. 유학 기간 동안 1934년 전위를 표방하는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에서 수학했으며 1936년 그 연구생들이 조직한 백만회(白蠻會)에서 길진섭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37년 귀국하였으나 도쿄의 전위미술단체인 자유미술가협회(40년 이후 미술창작가협회)의 회우로 1941년까지 참여하면서 큐비즘, 구성주의적 기하추상, 초현실주의 등 여러 경향을 실험했다. 전시체제로 접어든 후에는 김용준, 이태준, 길진섭 등이 주도한 잡지 문장(文章)’의 상고주의적 취향을 공유하면서 고미술품 수집에 심취하기도 했다.

 

해방 후 1947년 유영국, 장욱진 등과 신사실파를 결성하여 19533회전까지 활동하였다. 이 무렵부터 그는 백자항아리, , 사슴, 학 등의 민속적 기물과 자연 풍경을 양식화한 반추상 화면을 구사하여 전통미를 현대화한 작가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1956년 파리로 떠나 3년간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던 시기에도 앵포르멜의 영향으로 두터운 물감이 주는 마티에르 효과와 선에 대한 실험이 나타나나 한국적 정서를 가진 자연과 기물을 단순화한 반추상 경향은 지속되었다. 1959년 귀국하여 홍익대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1963년 브라질의 상파울로비엔날레에 참여하면서 지역적 한계를 통감한 후 바로 뉴욕으로 가 1974년 작고하기까지 전업 작가로 활동했다. 뉴욕시기 그는 특유의 점화 양식을 완성하여 한국적 추상화를 일구어낸 선구자로 평가받게 된다.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에 조선방직을 인수하여 국내 최대의 방직재벌 기업가가 된 삼호그룹의 정재호 회장이 퇴계로에 자택을 신축하면서 대형 벽화용으로 주문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파스텔톤의 색면 배경 위에 양식화된 인물과 사물, 동물 등이 정면 또는 정측면으로 배열되어 고답적이 장식성을 띈다. 단순화된 나무, 항아리를 이거나 안은 반나의 여인들, 백자 항아리와 학, 사슴, 쪼그리고 앉은 노점상과 꽃장수의 수레, 새장 등은 모두 1948년 제1신사실파시기부터 50년대까지 김환기가 즐겨 사용했던 모티브들이다.

 

그러나 전쟁과 피난의 현실을 은유했던 노점상이나 인물들이 판자집, 천막촌 대신 조선 궁궐 건축물과 함께 배열되고, 물을 긷고 고기를 잡아오는 노동현장의 여성들은 고운 천의 옷을 걸친 여성들로 변모하여 전체적으로 장식적인 풍요의 이미지를 자아낸다. 비대칭의 자연스러운 선과 투박한 색면 처리는 조선 백자의 형식미를 흠모했던 이 시기 김환기 작품의 조형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60년대 말 방만한 경영으로 삼호그룹이 쇠락하면서 이 작품은 미술시장에 나와 이후 삼성이 인수하게 되었다.<=권행가>

 

 

 

김환기-3-X-69#120, 160&times;129㎝ 캔버스에 유채, 1969. 사진=권동철

 

 

◇색면구도에 결합된 과도기작품

‘3-X-69#120’은 김환기의 뉴욕시기(1963~1974) 작품으로 본격적인 점화 형식이 나타나기 이전에 부분적으로 찍힌 색점이 색면 구도에 결합된 과도기적 작품이다. 뉴욕에서 마크 로스코(Mark Rothko)를 비롯한 색면추상,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을 접하면서 김환기는 구체적 모티브를 없애고 바탕에 점, , 면으로만 구성된 추상회화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색조의 처리 방식도 파리 시기의 두터운 마티에르 대신 캔버스에 스며들 듯 담백하게 처리하여 선과 면, 점이 서로 미묘하게 진동하는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점화의 가능성을 실험하기 시작하면서 김환기는 작품에 제작날짜와 일련번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의 일기에는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날짜와 완성한 날짜, 작품 일련번호와 크기 등이 기록되기 시작했는데 대체로 작품 제목은 작품의 시작 날짜를 따른다. 이 작품의 제목 ‘3-X-69#120’1969103일 제작을 시작한 120번째 작품을 의미한다.<=권행가>

 

 

 

김환기-산울림19-11-73#307, 264&times;213㎝ 캔버스에 유채, 1973 ⓒ(재)환기재단&middot;환기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제공.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1964년 뉴욕에 정착 후 점, , 면 만으로 이루어진 추상 화면에 대한 실험을 계속하던 중 김환기는 1968선인가? 점인가? 선보다는 점이 개성적인 것 같다”, “날으는 점, 점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그런 것을 시도하다. 이런 걸 계속해 보자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 무렵부터 점만으로 이루어진 올오버 구도의 점화 양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0년부터는 보다 본격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점화들이 시도되었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1970)’에서 볼 수 있듯이 70년의 점화는 단색조의 점들을 화면 전면에 걸쳐 수평, 수직으로 채워나간 형태이다. 무명 캔버스에 아교질을 한 후 미리 풀어둔 물감으로 점을 찍고 그 점을 사각형의 선으로 둘러싸기를 반복한다. 색점들은 화면 전체에 걸쳐 반복되면서 리듬을 만들어내며 청색의 부드러운 농담과 번지는 효과는 무한히 확산되어가는 공간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71년부터는 수평 수직 구도는 동심원 구도로 발전되며 직선 구도가 교차되기도 하고 하얀 직선이 결합되어 공간이 보다 복잡하게 중첩되면서 미묘한 진동을 만들어내는 화면으로 발전한다.

 

1973년 작품인 산울림 19--73#307’은 뉴욕시기 점화 양식의 완성 단계를 보여준다. 흰 사각형 안에는 동심원들이 세 방향으로 퍼져나가면서 울림을 만들어내며, 흰색의 사각형 밖에서 대각선의 방향으로 별처럼 쏟아지는 점들과 대조를 이룬다. 채색 없이 캔버스 바탕을 그대로 남겨둔 흰색의 사각형은 내부와 외부의 공간이 중첩되면서 무한의 공간으로 깊이 확장되는 효과를 자아낸다. 흰 선에는 점이 찍히면서 번진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그 자체로도 미묘한 진동을 만들어낸다. 작은 점들의 파동이 광대한 우주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 효과를 자아내는 듯한 점화를 통해 김환기는 미국의 색면 추상과 차별화되는 동양적, 시적 추상화의 세계를 구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환기의 일기에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1973219일 올해 처음 큰 캔바스 시작하다. 311, 20일 만에 307번을 끝내다. 이번 작품처럼 고된 적이 없다. 종일 안개비 내리다.”<=권행가>

 

권동철=282022.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