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자료

한국연극의 巨人-이해랑(李海浪)(29)‥동심 그대로, LEE HAERANG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9. 4. 2. 00:13

  마지막 작품 <햄릿>을 연출하고 인터뷰하는 이해랑



미당 서정주

이해랑은 연극 분야 밖에서 평생 선배로서 또는 친구로서 정을 맺어온 인물들이 적지 않다. 가령 우리 시의 큰 시인 미당 서정주와 조병화, 소설가 김동리, 음악가 임원식, 화가 유경채, 시나리오 작가 유한철 등 대표적인 원로예술가들이 있다.

 

서정주 시인은 그는 모든 일에 동심(童心) 그대로의 솔직한 인물로서 거짓말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이 점이 나는 특히 좋아서 그와 같이 앉기를 즐겼고, 그런 그에 감염되어서는 비밀이랄 것도 함께 다 털어놓아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란히 깔깔거리고 웃을 수 있는 것이 기뻤었다. 그에게는 그런 도인(道人)의 모습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극작가 차범석

유치진과 이해랑으로 이어지는 한국리얼리즘의 거대산맥을 잇는 극작가 차범석과 이해랑의 인연은 흥미롭다. 차범석은 나의 연극 개안을 인도해주신 이해랑 선생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그때 이해랑 선생님은 처음으로 크게 눈을 떠 보이셨다. 칭찬도 격려도 놀라움도 아닌 그런 대작을 학생이 감당해낼 수 있을까, 라는 불안의 표정이었다. 그러나 엷은 입술을 꼭 다물고 잘해보라고 내 손을 쥐어주셨다. 어언 55년 전 일이다. 나는 이해랑 선생의 첫 인상에서 이른바 외유내강(外柔內剛)형임을 짐작했다.”

 



배우 강계식

해방 전 현대극장에서 함께 무대에 섰던 원로 배우 강계식(姜桂植)이해랑이야말로 쟁이로 머물러 온 배우를 예술가로서의 지위(地位)로 다져 놓은 인물이었다.”라고 했다.

 

연출가 임영웅(林英雄)

내가 이해랑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뵙고 인사라도 드리게 된 것은 19565월경이다. 나의 스승인 고() 김규대(金圭大)선생님의 극단 신협에서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임희재 작)로 데뷔 연출을 하면서 나를 조연출 겸 무대감독으로 발탁해서 극단연습장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 뒤 195711일부터 공연한 <세일즈맨의 죽음>(아서 밀러 작, 오화섭 역, 김규대 연출) 때도 계속해서 조연출, 무대감독을 하면서 약10개월 동안 이 선생님을 가끔 대하게 되었다. (……) 만년의 이해랑 선생님에게서는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것은 내가 소극장 산울림을 개관한 것에 대한 격려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성 배우 손숙

이해랑이 만년 들어서 가장 빼어난 여배우로 칭찬하면서 딸처럼 사랑했던 제자는 단연 손숙(孫淑)이었다. 그녀는 여타 배우들과는 달리 가정을 꾸린 한참 뒤에 연극 무대에 섰기 때문에 그와 만난 것 역시 비교적 늦은 편이었다. 1970년 가을 국립극단 제59회 공연작인 <인조인간> 연습 도중 사고로 여배우 한 명이 갑자기 출연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녀가 대타로 출연케 됨으로써 두 사람 간의 첫 대면이 이루어진 것이다.

 

술과 같은 기호품과는 거리가 먼 결벽증(?)의 그녀에게 연습을 시키면서 맥주를 마시는 이해랑의 연출은 낯설 수밖에 없어서 첫인상은 별로였던 것 같다. 그동안 몇 작품으로 연출가들과 작업을 해보긴 했어도 그녀는 신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연습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그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생각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저간의 사정에 대하여 그녀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전까지 내가 봐왔던 다른 연출가와는 너무나 달랐다. 늘 웃고 계셨고, 조용조용 작은 소리로 배우가 자존심 상하지 않게 지적해주셨다. 대사 한 줄 한 줄을 그냥 넘어가시지 않고 열 번 스무 번이라도 완벽해질 때까지 연습을 시키셨다.

 

어떤 날은 대본 한 페이지를 두 시간인가 연습을 하다가 선생님도 지치셨고 나는 펑펑 운적도 있었다. 나는 차츰 당신이 속으로 그 대사를 똑같이 따라 하시고 지적해주시느라고 너무 힘이 드셔서 맥주라도 마시지 않으시면 정말 견디기 힘드실 것이라고 선생님을 이해하고 나중에는 맥주가 떨어지면 내가 얼른 사다놓기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선생님은 나를 배우로 만들어주시고 인정해주셨다.

 

나는 선생님에게 호흡으로 대사하는 법을 배웠고, 내면 연기가 무엇인지 대사와 대사 사이의 침묵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를 하나씩 배워나갔다. 그 후 국립극단에 있는 동안 나는 선생님 밑에서 많은 작품을 연기하면서 참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고 보면 오늘 배우로서의 나를 만들어주신 건 80%가 선생님이셨다.” [정리:권동철]

 

데일리한국 201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