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지면기사

[주간한국]한국연극의 巨人-이해랑(李海浪)(17)‥체호프 <세 자매>,햄릿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9. 1. 31. 20:25


   국립극장 제46회 공연 <세 자매> 포스터(안톤 체호프 작, 이해랑 연출)



연극의 진실

 

 

햄릿의 연극 줄거리는 통속이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 대한 복수로 시작하여 대단원에 가서 그 복수를 하는 데서 막을 내린다. 한밤중에 아버지의 망령이 나타나서 그의 아우 크로디어스 왕에게 피살되었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햄릿은 그와 유사한 연극을 시켜서, 보고 있는 왕의 표정에서 그에 대한 확실한 심증을 얻어낸다. 그러나 아무도 선왕(先王)이 그의 아우에게 살해되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 물적 증거도 없다. 망령의 존재를 부인하고 연극을 거짓이라고 해버리면 햄릿은 그야말로 연극으로서 성립이 되지를 않는다.

 

연극 햄릿은 그런 것을 우리로 하여금 거짓이 아니고 진정한 사실과 같이 믿게 만들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극작가로서의 셰익스피어의 천재인 면모를 본다. 유려한 말의 향연에서도 그것을 느끼지만 점진적으로 엮어 나가다가 나중에 얘기를 종합해가는 그 과정의 교묘한 드라마투르기의 전개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믿을 수 없는 허구의 사실을 우리에게 진실한 것으로 믿게 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연극의 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종잡을 수 없이 이론이 구구한 햄릿의 성격, 거짓으로 미친 척하는 대목은 차지하고라도, 지성인으로 모든 것을 어지간히 참고 견딜 수 있는 그가 느닷없이 격정에 사로잡힌다. 치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인간을 저주하고 오피리어의 사랑에 행패를 부린다. 그리고는 또 레어티즈와 같이 무덤에 뛰어들어 가서는 오피리어에 대한 사랑을 호언으로 과장하고 있다. 이런 것을 한 장면만을 보고 그의 성격을 따지면 혼란이 온다.

 

그러나 그 이전과 그 다음을 연결하여 보면 그 결함이 곧잘 이해가 간다. 햄릿의 인물로 그러한 전체적인 드라마투르기의 논리적인 전개 속에서 교묘하게 성격이 통일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그에게는 언제나 문제였다. 그의 생각과 행동이 조화되지 않는 기로(岐路)에서 그는 언제나 정신적으로 방황을 하고 있었다. 그러한 그의 마음을 버선 속을 뒤집어 보이듯이 뒤집어 보일 수는 없다.

 

그저 그의 행동의 틈바구니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듣고 우리는 햄릿의 극적인 진실을 느낀다. 진실이 현실에서는 침묵을 하고 연극의 세계에서는 입을 열듯이, 대화에서는 가면을 쓰고 독백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는 햄릿의 방황하는 괴로운 행동의 틈새에서, 그가 말하지 않고 있는 극적진실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나의 연출은 그 소리를 듣고 그것을 무대에 탄력적인 행동으로 옮겨 놓는 데 노력을 경주하였다. 삼 개월 동안을 하루같이 성실하게 열심히 연습을 하여준 연기자들에게 감사한다.

演劇眞實, 演出 李海浪<藝術院長>, 19855월 햄릿 연출 팸플릿에 게재된 내용.

 


국립극단의 <세 자매>(체호프 작) 연출을 끝내고



안톤 체호프 작품을 가장 좋아 한다

안톤 체호프는 표면에 드러나고 보여 지는 인생은 범용(凡庸)하기 이를 데 없지만 막 뒤에서는 언제나 소용돌이 인생이 꿈틀 댄다고 보았다. 연극은 바로 그렇게 한 꺼풀을 가리고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다름 아닌 안톤 체호프다. 인생의 표면보다도 그 이면에서 더 중요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처럼 연극도 보이는 것보다도 막 뒤의 보이지 않는 곳에 더 중요한 연극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극관을 이해랑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수용하여 무대 위에서 실천해왔다. 그는 실제로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는 1967년 초 국립극장의 연출 제의를 받고 선뜻 체호프의 <세 자매>를 추천한 적이 있다. 그때의 연출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국립극장에서 나에게 연출하고 싶은 작품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는 즉석에서 체호프의 <세 자매>를 추천하였다. 체호프까지 가자는 것이 연극에 눈을 뜬 후의 나의 숙원(宿願)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세 자매>의 극적 분위기를 다시 없이 사랑하였다. 군대가 떠나가는 대단원의 극적정서는 나의 가슴에 잊을 수 없는 큰 감동을 주었다. (……) 내가 하고 싶은 연극, 내가 좋아하는 작품의 연출을 맡았으니 나로서는 힘을 다하여 좋은 연극을 창조하고 싶다.”

 

이해랑은 체호프를 체질적으로 좋아했고 체호프가 그려놓은 세계에 탐닉했다. 물론 체호프의 가정 배경과 성장, 교육과정은 그와는 딴판이다. 왜냐하면 체호프는 가난한 잡화상의 여러 형제 중 하나로 태어나서 어려운 환경 하에서 의학을 공부한 반면에 그는 상류사회 가정의 외동아들로 어려움 없이 자라고 또 예술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시 어머니와 일찍 사별하고 외롭게 성장하면서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본 경우이기 때문에 우울하고 고독한 젊은 시절을 보낸 체호프와 만나는 지점이 있기는 하다. 따라서 그는 인생의 깊은 경지를 그려낸 체호프의 세계에 다가가고 싶어 한 듯싶다


[정리:권동철]/주간한국 20191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