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美術人

[최예태 회화60년]서양화가 최예태,울림 최예태,최예태 작가,ARTIST CHOI YE TAE,군산고 출신화가,김제시 진봉면,蔚林 崔禮泰,KAMA,최예태 화백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8. 12. 24. 19:36


작업 중인 200호 대작 백두산천지부분도 앞에서 포즈를 취한 최예태 작가(ARTIST CHOI YE TAE). “예술이란 지적고양과 뜨거운 열정에 의해 도달하게 되는 은총과 섭리의 경지라고 생각됩니다. 나의 그림에 더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아내고 싶다라고 전했다. <사진=권동철>



[인터뷰]

서양화가 최예태 여든 넘으니 이제야 겨우 '그림'이 보입니다

 

 

작업 중인 200호 대작 백두산천지부분도 앞에서 포즈를 취한 최예태 작가(ARTIST CHOI YE TAE). “예술이란 지적고양과 뜨거운 열정에 의해 도달하게 되는 은총과 섭리의 경지라고 생각됩니다. 나의 그림에 더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아내고 싶다라고 전했다.

 

한국회화 신구상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울림 최예태 화백의 출판기념 초대전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3층 특별관에서 개최된다. '울림 최예태 회화 60년 기념선집 -그 예술의 발자취라는 타이틀로 26일 시작되는 이번 초대전은 내년 17일까지 해를 넘겨가며 약 2주간 열린다.

 

선집은 유년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울림 최예태(蔚林 崔禮泰)의 삶과 예술 그 산수(傘壽)여정의 자취를 총 5부로 구성했다. 최예태 화백은 일제강점기말기 민족문화말살시기였던 1937년 전북 김제시 진봉면에서 출생했다.

  

울림 최예태 회화60년 기념선집-그 예술의 발자취표지. 황현택·이명 공저, 232, 2만원, 알렉산더 테크닉 , 2018.

 

1970전북도전대상, 국전(國展, 대한민국미술전람회)다수 특선, 2005한국구상대제전특별상등을 두루 수상했다. 1958년 첫 개인전을 비롯해 로마화랑(일본 동경), 도불기념전(덕수미술관), Quebec정부기획초대(캐나다 몬트리올), 진화랑, 옹브르 에 뤼미에르 갤러리(프랑스 파리), 최예태 회화50(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2008), 군산근대역사박물관(팔순기념전, 2016) 등 주요 개인초대전을 가지며 특유의 화풍을 널리 선보였다. 또한 KAMA(한국현대미술가협회)창립회장, 성신여자대학교 운정그린캠퍼스에 신록의 인상(1000)’ 등 최예태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왼쪽)군산고 3학년 때, 195842~9일까지 수채화 25점으로 군산 비둘기다방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오른쪽)향수의 상징, 162×130Oil on canvas, 1976. 25회 국전 초특선작.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불곡산자락, 겨울햇살이 스며드는 '최예태 아틀리에' 최예태 화백을 인터뷰했다.

 

화가의 꿈은 언제 싹텄는지요.

 

“19516·25전쟁이 한창이던 때, 나는 군산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전북학생사생대회에 출전했어요. 그때 대상을 받았죠. 전북최고의 소년미술 왕이 되었는데 화가의 꿈을 품은 종짓불이 되었습니다. 유년시절엔 끝없이 펼쳐진 만경평야의 원색적이고 화려한 사계의 색채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나의 몸 속 깊이 각인되었는데 그것이 내 회화세계에 강렬하고 생명력 있는 색채로 발현됐다고 봅니다. ‘색채의 화가라고 회자되곤 하는데 그런 면에서 나의 색채는 선험적인 것이라 여깁니다.”

 

화가로서 일생을 걸어오시면서 가슴에 새겨둔 좌우명이 있다면.

 

군산 동중학교 1~3학년 동안 손현기 미술선생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예술의 길이란 준엄한 산령을 넘는 가시밭길과 같은 형극의 길임을 미리 알고 굳센 각오와 결단으로 미술에 임할 것을 당부하셨지요. 화업의 노정을 건너오면서 지칠 때마다 격려가 되었습니다.”

 

캐나다 시절을 되돌아보신다면 어떤게 먼저 떠오르시는지요.

 

“1988년 몬트리올에 살면서 오타와에 있는 알공 퀸 칼리지에서 서양화(수채화)를 공부했지요. 그리고 1991년 퀘벡유니버시티에 입학하여 3년 동안 순수비구상과정을 정식 이수했습니다. 당시 새로운 추상세계에 흠뻑 빠져 있었어요. 몬트리올에서 뉴욕까지는 멀지않은 거리여서 자주 찾았고 아트 스튜던트 리그 오브 뉴욕에서도 작업했습니다.

  

(왼쪽)묵시적 사유, 162.2×112.1Oil on canvas, 2003 (오른쪽)청색누드, 90.5×117Oil on canvas, 2002.

 

청색 누드등 독창적 누드시리즈를 다작하셨는데요.

 

누드를 그릴 때는 살아있는 기분이 들어요. 뭐랄까, 가치 있고 영원토록 변치 않는 아름다운 모티브가 누드라고 생각해요. 초창기에는 피부색 재현에 초점을 두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내 감성세계가 담긴 작품에 대한 갈증이 일었어요. 그래서 청색, 회색, 붉은색 등 다양한 색감을 운용했는데 애호가들에게 과분한 찬사를 받았습니다.”

 

강렬한 색채와 분할된 화면의 붉은 산의 판타지에 대해 말씀 주시지요.

 

“1970~80년대 스케치를 많이 다녔었는데 그 시기 만추의 광릉풍경이라는 작품을 작은 캔버스에 그렸었어요. 마침 그때 나의 화실에 저명한 일본화가 한 분이 며칠 동안 머물렀는데, 100호짜리 대작들 사이 그 조그만 작품이 좋다며 크게 그리라고 몇 번이나 권유했죠. 그래서 진화랑 초대전에서 대작으로 발표했는데 가히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1988년 캐나다를 가면서 알래스카를 경유할 때였어요. 오후5시쯤이었나, 붉은 황혼에 불타오르는 산의 경관이 확 들어왔어요. 석탄 같은 검은 산과 그 뒤 붉게 타오르는 봉우리 또 그 너머 순백의 하얀 만년설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졌어요.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죠.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심장이 뛰고 가슴속에서 어떤 불덩이가 솟아오르면서 바로 이거다!’ 그런 희열이 밀려들었지요. 이전 한국에서 그렸던 산 그림과 알래스카 노을 속 붉게 타오르는 산이 생생하게 내 온몸을 데우며 오버랩 된 것입니다.”

 

면과 색,130.3×162.2Mixed media, 2017


누드와 산은 어떤 면이 닮았나요.

 

자연과 누드는 서로 고유의 생동감과 긴장감이 들어있어요. 그 속에서 일종의 정령(精靈)을 발견하곤 합니다. 산은 조물주가 만든 가장 훌륭한 조형물이며, 흥미로운 것은 인체에서도 그러한 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업 60년 전시회를 여시는데 소회를 말씀해주신다면.

 

감회가 깊지요. 내가 40~50대만 해도 여든 살이면 정말 어마어마한 거장들이 전시회를 하는 걸로 알았거든요. 내가 바로 그 나이에 왔습니다.(웃음) 나는 무지무지하게 바쁘게 살아왔어요. 보람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해요. 자랑이라면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린 것이지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남들 다 잘 때 깨어나 그렸는데 보통 밤샘할 때가 많았어요.

 

그리고 이제 겨우 그림이 보이는 것 같아요. 지금부터 참다운 내 모습을 그려야겠습니다. 달을 얻으려 할 땐 그것을 등져야 하듯 명화를 그린다는 의식 자체를 버리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데일리한국, 201812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