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자연과 인간 그 공존의 하모니-FROM 화가 장승혜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4. 5. 24. 00:14

 

화음-Harmonized Nature 53.0×45.5mixed media 1998

 

 

 

화음연작밝고 강렬한 오방색과 보색을 통한 대조와 균형 

 

나무, , 나비, 구름, , . 해맑은 서정의 단면들을 따뜻하게 또 싱그러운 감수성으로 화면은 수용하고 있다. 저마다의 독특한 개별적 정신에 다가갈 수 있도록 열어 놓음으로써 우리는 서로 상호작용하고 경이로움과 새로움을 체험하게 된다.

 

화면의 자연 이미지들을 찬찬히 음미해 보면 고즈넉한 시간, 자리를 기꺼이 허락한 풀잎에 앉아 관조(觀照)와 여유로움의 자아를 비추는 호흡을 느끼게 된다. 곧 화음(和音)의 세계다.

 

아주 작고도 동그란 이슬방울에 고뇌의 밤이 사라지는 아침. 새들이 분주히 지저귀며 기어코 잠을 깨우고야 만 이른 시간, 숲 가까운 호숫가 물새들의 자맥질 소리가 경쾌하다. 햇빛이 고요의 수면과 만난 영롱한 빛의 찬가. “우리의 모든 아름다움은 너의 지붕 아래에서 산다./너는 충만하다, 너는 그리고 어디서나 원만하다, 너의 힘이 미치는 데까지……/너는 아직도 살고 있는 신에 가장 가깝다.”(김현승 시, 빛 중에서)

 

 

 

화음-화음-Toward The Happiness 40.9×31.8cm mixed media 2009

 

 

자연과 자연스러움, 자유가 그리워지다

꽃이, 꽃잎이 흔들린다. 바람은, 저 나무에서 왔나? 가느다란 가지에서 졸던 나비가 날개를 펴고 나풀나풀 우아하게 날고 있는 잔바람의 속삭임. 나무는 나비의 노래를 다 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손끝이 시선이 다다르지 못하는 저 창공을 마냥 가벼이 노래하네.

 

푸르른 숲의 계절엔 버겁고도 무거운 삶을 지탱해온 나그네에 그늘의 휴식을, 흰 눈의 계절엔 꼿꼿이 서서 묵상에 잠긴 듯 나무여. 새들의 둥지에 가지를 허락하고 나목(裸木)의 너에 기대어 흐느끼는 참회의 눈물마저 닦아주는구나. “나 역시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면서 그 어느 때보다 자연과 자연스러움, 자유가 그리워지는구나.”(작가노트)

 

단정하고 깔끔하면서도 또 두터운 거친 마티에르의 화면은 숨 쉬고 있다. 대체로 주조색(主調色)을 이루지만 화폭 어딘가에 존재하는 보색은 상반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다름을 넘어선 같음쪽으로 기우는 자연과 인간 그 공존의 미학. 흔히 녹색과 빨강, 파랑과 빨강, 코발트며 그린 블루 등을 주요색으로 애용하고 고채도의 빨강을 대비시켜 채도의 대조와 균형을 유발시키고 있다.

 

나무와 풀과 꽃들이 저마다의 화첩(畵帖)에 하루의 기록들을 정성스럽게 옮길 즈음, 딸각 작은 창() 버건디(Burgundy) 컬러 커튼이 가벼이 조금 열린다. 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물의 흐름을 따라 아빠가 다정히 묶어준 긴 머리 소녀의 땋은 머리처럼 담쟁이덩굴을 친구하여 저렇게 평온히 흔들리는 빨강 꽃이여.

 

조금씩 노랗게 물이 들고 어떤 것은 검게 퇴적해 가며 만든 지층의 결은 덤불로 우거진 숲의 후원자. 숲엔, 새들이 목을 축이는 옹달샘과 나무와 돌들과 들꽃들 사이를 자유자재로 휘돌아다니는 졸졸졸 작은 물길이 날마다 기쁜 소식들을 전하고 있다.

 

저녁을 알리고 저 산 너머 둥지를 찾아 새들이 떠나면 푸르고 깊은 달빛 밤이 찾아왔다. 숲속의 동그란 광장. 꽃과 나비와 나무와 새들이 모여 그들의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 풀들은 비스듬히 드러누워 머리를 괴고 꾸벅꾸벅 있을 즈음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내려온 별의 아득하고 아늑한 이야기에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긴 그림자를 숲 너머 들녘까지 드리우는, 노을. 숲은 옅은 핑크빛으로 점점이 물들어 가고 바스락 바스락 걷는 발자국 소리 더디다. 저녁 해가 저 산을 넘을 즈음 밀려오는 우수(憂愁)!

 

 

 

화음-When I was Little 45.5×37.9cm mixed media 2009

 

 

저마다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노라면

조각보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러한 화면 분할과 재구성은 주어진 소재의 이미지들과 결합하여 자유로운 비약을 하면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주로 밝고 강한 오방색의 배색이 시각적으로는 햇빛 아래서의 쾌락을 시사하고 있으면서도, 관념적으로는 어떤 근원과 본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읽혀질 수 있다.”(이재언 미술평론가)

 

연비어약(鳶飛魚躍)이라 했던가, 하늘에 솔개가 날고 물속에 고기가 뛰어 노는 것이 자연스럽고 조화롭다. “만물이 저마다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천지의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 자연의 오묘한 도()”가 아니겠는가.(지혜의 샘 시리즈 고사성어, 김영진 엮음) 이런 점에서 장승혜 작가의 화음은 정신의 세계다. 자연과 합일된 인간의 모습 그 이치를 발현(發顯)하고 있기 때문으로.

 

 

출처=이코노믹리뷰 문화전문기자 권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