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90㎝(each)
일상 그 자유로운 춤의 생동감
“현재란 결국 과거가 되어버리는 점(點)과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간을, 그러한 점을 축 늘어놓은 직선처럼 상상한다. 어떠한 현재도 과거와 함께 있으며 과거와 동시에 있기에, 사실 현재는 단순히 현재로서 생동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란 이미 언제나 현재와 과거의 복합체이고 결정체이다.”<들뢰즈-유동의 철학, 우노 구니이치 지음, 이정우·김동선 옮김, 그린비 刊>
한국추상회화1세대 김봉태 화백은 일생을 추상작업을 해오고 있다. 일상에서 무심하게 지나친 버려진 상자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유기적 연관성과 입체적인 일루전의 경쾌한 유락 ‘Dancing Box(춤추는 상자)’연작 역시 작가정신이 빚어낸 고귀한 창작의 산물과 다름 아니다. “어느 날 슈퍼마켓에서 버려진 상자들이 눈에 띄었다. 유기체나 인간의 형태느낌으로 풀어가 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잔뜩 상자를 주어와 색을 칠하고 열심히 즐기고 놀면서 의인화된 자유로움을 구상하게 된 것이다. 상자는 막상 펼쳐보니 형태가 너무 많았다. 직사각형으로만 단정하는 건 고정관념에 불과했다.”
Dancing Box, 90×180㎝, Acrylic and tape on frosted plexiglass, 2005
◇그림, 쉬지 않고 해야 하는 것
화면의 강렬한 원색에 대해 묻자 오랜 기억 하나를 전했다. “고등학교 때 스승이 고흐작품이 실린 책을 보여줬는데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연과 연관된 자기내면에 가지고 있는 원초적 에너지가 보였는데 색채의 생기가 내 심장을 뜨겁게 덥혔다.”
화백은 1960년대 앵포르멜미술그룹 ‘60미협’과 ‘악튀엘’창립멤버로 활동하였고 1963년 제3회 파리비엔날레에 참여하였다. 그해 스물여섯 나이에 도미하여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22년간 활동하며 연구와 ‘그림자’시리즈를 발표하였다. 1986년 귀국하여 오방색과 태극, 팔괘 등을 통한 우주조화의 ‘비시원(非始原)’연작, 1997년 ‘윈도우’시리즈, 2005년 센세이션을 일으킨 ‘Dancing Box’와 이후 ‘축적’시리즈를 발표하는 등 현재까지 작업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를 물어보았다. 197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 있는 ‘퍼시픽 아시아 뮤지엄’전시를 꼽았다. “동양문화에 대한 연구와 컬렉션을 하는 미술관에서 해 준다는 것이 고마웠고 많은 동기부여가 됐다.” 그리고 2013년 고향인 부산에서 가진 부산시립미술관전시,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김봉태’의 대규모 회고전을 꼽았다.
“미국서 작업한 것을 한국 관람자에게 보여준 의미가 컸다. ‘이 분이 이렇게 작업해 왔구나’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었다. 긴 세월동안 작품자체는 많지만 정말 누가 봐도 ‘야 대단하다. 좋은 작품이다’라고 공감할 수 있는지 또 그런 작품이 많은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살았는지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도 생각하게 되었다.”
김봉태 화백
김봉태(1937~)작가는 서울대학교 회화과와 미국 오티스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사우스 베일러대학교 미술대학장(1982~87년), 덕성여대 미술대학 교수(1986~92년)를 역임했고 2007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인상 서양화부문을 수상했다. 갤러리 현대, 도쿄미술세계갤러리 등에서 다수 개인전을 가졌다.
이번 전시는 ‘춤추는 상자’, ‘축적’ 등의 회화와 조각 등 40여점으로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 이유진갤러리에서 4월13일부터 5월12일까지 열린다. 전시장에서 인터뷰한 화백에게 화가의 길에 대한 고견을 청했다.
“나는 부산서 서울, 미국 그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한곳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나의 생각들이 살면서 바뀌고 내 그림도 바뀐다. 평생을 그림을 그렸는데 뭐랄까 무심히 흘러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삶이 힘드니까 중간에 다른 길로 가게 되는데 그림이란 쉬지 않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7년 4월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