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아(雅), 6×7×76㎝ 철 용접, 1979 (우)이브, 35×35×80㎝ 석고 원형, 1965
마음의 텃밭 그 비움과 충만의 길
“고요함, 그것을 경배하라. 그는 그것으로부터 와서, 그것으로 돌아갈지니, 그 속에서 숨을 쉬고 있으므로.”<우파니샤드,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프리초프 카프라 著, 이성범 김용정 옮김, 범양사출판부 刊>
한국현대추상조각 1세대 최만린 작가를 전시장에 만났다. 인터뷰하는 동안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 흐트러짐 없이 위트와 진지함을 견지하며 자상하게 배려해 주었다. 근황을 묻자 “애들이 바닷가에서 모래를 주워 빚듯이 상념을 접으니 요새는 작업실에 있으면 굉장히 편하다. 뭔가 그럴 듯한 생각을 하고 작업하지 않는다. 나이 들면 어린애 같이 된다더니 ‘이게 좋구나!’싶다”라며 미소 지었다.
흔히 예술가의 길을 가시밭길로 표현하기도 한다며 고견을 청했다. “일생 예술을 관념적으로 크게 생각 안 했다. 나름대로 살면서 찾았던 게 마음의 농사꾼이다. 폭풍에 휩쓸려가고 남은 것이라도 다시 애써 갈무리하여 농부가 그것을 나누는 것처럼 마음의 텃밭을 가꾸는 그런 심정이다. 내가 태어난 시대는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다스리고 있었고 6.25한국전쟁 이후 폐허를 목격했다.
나무는 잎사귀가 돋고 열매를 맺지만 자기 스스로 거처를 정하지 못한다. 바람에 날리는 그곳에 정착하여 살듯 척박하든 풍요로운 곳이던 거기서 뿌리내리는 겸허와 정직함이 있어야 한다. 길 없는 길을 간다는 것은 두렵지만 자신만의 길이 생겨나니 망설이지 말라”고 전했다.
(좌)O, 19×17×17㎝ 청동, 2012 (우)천(天), 60×20×45㎝ 브론즈, 1965
◇그 속에 내가 있구나!
작가의 발자취를 개괄하면 네시기로 분류할 수 있다. △1957~65년=‘이브’시리즈는 구약성서 이브가 아니라 생명이 부여되지만 원죄론적 인간을 대변한 얘기다. “전쟁을 겪는다는 것은 모든 것이 소실되고 상실하는 것이다. 고통과 슬픔의 감정이 부서져서 흩어져 있는 것을 다시 생명의 살점으로 뼈대를 맞추고 마음을 회복하는 심경으로 작업했다.”
△1965~75년=60년대 후반 천, 지, 현, 황 시리즈는 테라코타, 시멘트, 석고 등 재료를 사용하여 한자서체를 입체화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65년도 ‘천’시리즈는 복합적인 문화현상을 인식하여 제작한 작품으로 ‘한국의 조각가’로 불리게 했다. “당시 ‘자기 소리를 내야 한다’는 정체성에 대한 생각이 강했다. 서양의 줄자나 컴퍼스 등을 버리자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붓이 눈에 들어왔다. ‘펜과 이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런 생각이 먹을 찍어 파지에 눌려 보게 했는데 획을 연상시키는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1975~87년=“74년도 미국 연구실에서 보니 철판을 붙여 배를 만드는 등의 용접을 많이 하던데 반대로 했다. 나는 불대를 붓, 용접봉을 먹, 공간을 종이라 생각했다. 먹같이 녹으면 순간적으로 그것을 쌓아 올렸는데 그것이 ‘아’ 작품이다.” 이후 ‘태’, 80년대 ‘맥’시리즈를 발표한다. △1987~현재=80년대 후반 화강석과 브론즈 등의 재료를 혼합적으로 사용한 ‘점’연작과 이후 하나의 기호적인 입장에서 발표한 ‘O’시리즈는 비움과 충만의 총체적공존세계다.
조각가 최만린
한편 최만린(1935~)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미국 프렛대학을 수학했다. 서울대 교수(1967~2001), 국립현대미술관장(1997~1999)을 역임했다. 1957~58년 국전에 특선했고 1973년 신세계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현대화랑, 선화랑, 삼성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1991년 김세중 조각상, 2014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소재 성북구립미술관에서 4월5일 오픈하여 6월18일까지 열리는 ‘성북의 조각가들’전(展)에 출품, 참여하고 있다.
“성북관내가 다른 지역에 비해 예술적 입지가 남다른 면이 있다. 스승 되시던 김종영 선생을 비롯하여 교분을 가졌던 권진규 작가도 있으니 다시금 ‘그 속에 내가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지난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회고전 때와는 다른 울림이 있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7년 5월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