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지면기사

[전북도립미술관서울관]서양화가 양규준,6월7~13일,‘바람’展,전주고등학교 52회,순창군 적성면,채계산(釵笄山),캘리그라피,화이트클리프,Whitecliff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7. 5. 18. 20:40


바람(Wind), 162×130




장엄한 물결에 흩날리는 영혼의 씨앗

 

 

회전. 만약 이것이 근본적인 한계라면 어떻게 될까? 양자론의 본질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서로 다른 개념들을 배타적인 속성이 아니라 보완적으로 보아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보어는 가슴 가득 평온과 수용의 마음을 느꼈다. 파동과 입자가 존재한다. 둘은 상보적인 방법으로 존재한다. 그는 천천히 산을 내려갔다. 목도리가 바람에 팔랑거렸다. (중략) 온통 광활하고 무질서한 하얀 세상을 지나가는 질서정연한 에너지의 한 점을 앞에 두고서.”<얽힘의 시대, 루이자 길더(Louisa Gilder)지음, 노태복 옮김, ·>


 

화면은 진달래 찾아와 말려있던 새순이 자라는 봄, 애벌레 허물을 벗어 힘차게 날아오르듯 물이 여름 하늘로 솟구친다. 황금들녘 오곡백과로 에너지를 비축하는 가을, 하나의 꽃을 피우기 위한 생장휴면기 겨울이다.

 

그리고 검은 단색화는 모든 세계를 포용하는 오계(五季)인데 계절사이 또 태초의 우주 그 순수영혼을 지닌 존재에 깊숙이 내재된 심미세계다. 내면에서 보고 느끼는 중간계(中間季)를 화폭에 담아냄으로써 급변하는 사계변화를 명확하게 읽을 수 있고 평정심을 가지고 음미할 수 있는 여유라는 멋스러움을 드러낸다.

 

어린 나무는 자라서 고목이 되고, 고목은 다시 썩어 흙으로 돌아간다. 흙이 나무이고 나무가 흙이다. 그러면 과연 나무의 진실은 무엇인가. 낮에 우리는 나무를 볼 수 있다. 밤이 되면 어둠속에서 그것이 보이지 않지만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고 그것을 표현하려했다.”

    


五季(Five Season), 65×45.5(each), Acrylic on Canvas, 2017



서체형상화, 한국현대미술단면으로 주목


화백은 유년시절을 전북 순창군 적성면에서 살았다. 집 앞에서 바라보면 채계산(釵笄山)과 휘돌아가는 섬진강 그리고 노을이 드리우면 어디선가 동편제 소리가 들려올 것 같았다. “저 산 너머 기차가 지나간다는 어른말씀을 듣고 상상력을 통해 큰 외부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 어둑한 분위기에 감싸인 할아버지 방()에 드러누우면 7폭 서예병풍서체가 허공을 날아다니던 기억이 뚜렷하다.”

 

이와 함께 전주고 52회인 화백이 고3때 도서관옥상에 올라가 차령산맥능선을 바라보며 겹겹의 산 너머 대자연 앞에서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알 수 없는 슬픔의 감화에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런 사색을 통해 나의 진로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그림세계에 뛰어들었다. 내가 진정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이 스쳐간 사유흐름이 오늘날 나의 작업에 녹아져 있는 맥()이다.”

 

이처럼 그동안 서양화의 페인팅을 통해서 작업을 이어오다 서예적세계를 찾게 된 것은 전라도 전주지방의 전통적인 문화와 그가 경험한 서체에 대한 시각적 인상이 영향을 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동양의 캘리그라피(Calligraphy)인 서예예술이 내뿜는 아우라 그 진동의 형상화는 한국현대미술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강력한 한국성의 기운발휘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전시명제 바람에 대해 물어보았다. “삼라만상은 항상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데 그렇다면 어떤 것이 실체라 할 수 있을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라는 不繫於網如大風(불계어망여대풍)’ 불교경전이 있지 않은가. 내가 찾고자 하는 본질이 바람과 같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양규준 화백




한편 양규준 작가는 중앙대학교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 그리고 뉴질랜드(1997~2012)에서 활동하며 화이트클리프(Whitecliffe) 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이번 열여섯 번째 개인전은 67일부터 13일까지 서울시 인사동 인사아트센터6,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화가의 길에 대한 고견을 청했다.

 

현실 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세계로 몰입하기 위해서는 수십 분 여정을 거쳐서 들어간다. 주변사람들과 잦은 소통이 이루어지면 좋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 늘 아쉽다. 하지만 뭔가 모르게 뚜벅뚜벅 그 세계를 향해서 항상 가고 있는, 갈 수밖에 없는 나를 발견하게 되곤 한다. 그게 현실과 조금 유리된 세계이기 때문에 내가 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문득 어떤 갈등을 겪는 순간들이 밀려올 때가 있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7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