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얼굴-서울, 195×130㎝ Acrylic on Canvas, 2016
혼돈과 절실함 도시의 속살
“젖은 태양이 내 마음엔 그토록 신비로운 매력을 지녀. 눈물 통해 반짝이는 변덕스러운 그대 눈 같아. 거기엔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와 고요, 그리고 쾌락뿐. 세월에 닦여 반들거리는 가구가 우리 방을 장식하리;(중략) 보라, 저 운하 위에 잠자는 배들을. 떠도는 것이 그들의 기질;그대의 아무리 사소한 욕망도 가득 채우기 위해 그들은 세상 끝으로부터 온다. ”<여행으로의 초대(L’INVITATION AU VOYAGE),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詩, 윤영애 옮김, 문학과 지성사>
홍조 띤 얼굴처럼 황혼이 오후의 도시를 물들인다. 들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포착되고 하나 둘 환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환락과 의혹, 소통의 유연성, 연대와 불확실성이 뒤섞인 예측불가능의 이곳엔 정적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말쑥한 정장의 사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가다 갑자기 홱 돌아섰다. 영문도 모른 채 전 속력으로 달려가던, 거리를 배회하던 개 한 마리가 순간 황당하게 멈춰야만 했다.
그때 창(窓)을 통해 ‘허황된 그리고 무엇이 진실이고 허상인가’라는 의문의 지라시가 허공에 맴돌다 지상으로 흩어졌다. 그때였다. 도시를 역동의 생성공간으로 전환시킨 것은 뜻밖에도 부유하는 부조리한 오염의 입자를 정화하며 창밖으로 뻗어나가는 연록의 식물줄기였다. 그가 속도위반으로 지나가며 일순 본 것도 바로 그 푸름이었다. 그리고 명백해졌다.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과 대비되는 자연계의 강인한 융합의 질서를 목격하게 된 것이다.
92×73㎝(each)
◇인간중심을 향하는 예술
전시명제 ‘천의 얼굴-서울’은 크게 두 가지 메시지를 함의한다. 하나는 화려함 속 고독이다. 또 하나는 니체(Nietzsche) 허무주의와 19세기후반 인상주의 화파 영향을 받은 작가가 이 패러다임을 관통한 후 21세기 기술과 정보가 집약된 새로운 과학문명 속, 숨 가쁜 현대도시의 라이프 사이클에 주목하는데 서구영향을 받은 서울도 동일선상에서 조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면은 탐욕과 절제를 다스리는 것들을 총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의식과 관계된 동력에 대한 물음을 독창적형상의 담론으로 펼쳐내고 있다. 그렇다면 진실성을 발현해내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고교시절 가사가 기울어 산동네서 살았다. 대학에 들어가 나태해지다가도 그때를 생각하면 ‘내가 여기서 졸고 있으면 안 되지’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작업의 원동력은 고난이 본바탕이다”라고 토로했다.
화백은 1980년 문예진흥원예술회관에서 당시 산업화되어가는 아파트중심의 도시를 소재로 첫 개인전을 가졌고 1983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내 안의 나’를 찾기 위한 잠재의식을 낙서로 다뤄 한국대표로 출품,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1987~1989년간 프랑스 디 종 국립미술학교를 수학했다. 그는 “당시 작품 속엔 생의 절실함이 반드시 농축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 심미적 경향에서 1990년대 이후 절박함이 두드러지는 내면세계를 펼쳐오고 있는데 늘 나는 우연과 필연, 감성과 지성 등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엇갈리는 세계가 두루 만나 제3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주의 깊게 살피려 한다”라고 밝혔다.
유인수(劉仁洙) 화백
유인수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상명대학교 예체능대학장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창회장을 맡고 있다. 이번 열아홉 번째 개인전은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1층, 세브란스 아트 스페이스(Severance Art Space)에서 2017년 1월5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
한편 지난여름 경기도 이천의 작업실 방문이후 오랜만에 인사동 찻집에서 화백을 만났는데 화업에 대한 고견을 청했다. “탐미주의자는 예술작품 주위를 맴돌고 진정한 예술가는 인간중심을 향한다고 한다. 잠시 동안이라도 화폭에 기대어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 헛된 환상을 꿰뚫어 천(千)의 도시얼굴을 그려본다. 억압적 현실 속 유희와 치유의 가능성을 찾아보려 방황하기도 하고 순간 스쳐가는 일상의 파편들을 고뇌하면서 꿰매어보기도 한다. 진정한 자아가 무엇인지 숙고하게 되는 긴 겨울밤이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12월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