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지면기사

〔Zhang Dong Moon〕서양화가 장동문,회상(잭 런던,장동문 작가,말 작가,장동문 화백,張東文,폴 데스몬드,Paul Desmond,Bossa Antigua)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6. 12. 7. 10:25


()Retrospection, 100×80.3()=116.8×91




찬탄과 망각의 우수어린 눈동자  

 

 

적자생존 논리는 문명 속에 여전히 존재한다. 문명의 상징인 주인에 대한 충성과 야성의 부름 사이에서 갈등하던 벅이 마지막에 야성으로 회귀하는 것은 야성이 문명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야성은 문명의 이면에 있는 원시성, 황야, , 대자연이다.”<야성의 부름(The Call of the Wild), 잭 런던(Jack London)지음, 권택영 옮김, 민음사>

 

 

광야에 깔린 자옥한 안개를 헤치며 아직은 푸르스름한 여명이 새로운 아침을 열었다. 눈부시게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며 한 쌍의 야생마가 위대한 대자연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미지를 향한 걸음을 내딛는다. 색소포니스트 폴 데스몬드(Paul Desmond)가 연주한 보사 안티구아(Bossa Antigua)’ 보사노바 리듬의 운율에 발맞추듯 허옇게 뿜어져 나오는 입김은 생동감으로 넘친다.

 

잔물결로 흘러가는 분수령을 가벼이 건너자 대지는 싱그러운 햇살에 기지개를 켜고 드넓은 지평을 열어놓는다. 얼마만인가. 야망 가득했던 청춘시절, 강인한 체구의 골격과 근육이 발산하는 힘으로 넘쳐나던 그 시절. 히힝 긴 여운을 남기며 야성(野性)의 울음을 토해낸다. 생의 자취를 기록한 핑크빛 서신이 바람에 나부끼며 봉우리를 넘어간다. 숲은 오렌지색 컬러에 휩싸여 물들고 휘날리는 은빛 갈기 사이 은은한 오리엔탈블루 달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Sprint, 259.1×193.9Mixed media, 2016




산다는 것의 진솔한 파편

서울 송파구 오금동, 장 화백의 아틀리에 도착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금새 어둠이 밀려와 초저녁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아직 미완인 대작 말 그림이 좌우에 커다랗게 손님을 맞아주었다.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말을 그리기 시작하여 초기 ‘Sprint(역동)’시리즈에서 최근 우수에 젖어있는 듯 한 촉촉한 동공의 말 그림인 ‘Retrospection(회상)’에 이르기까지 30여년을 말과 함께 달려왔다.

 

십 중반나이의 화백은 뒤돌아보면 지나온 세월이 좋을 때도 있었는데 희로애락의 반추라고 할까 자연스럽게 나를 비롯하여 한 시대를 살아가는 여정의 회상을 동물인 말을 통해서 생의 이야기를 풀어내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오랜 세월을 말 작업에 천착하는지 궁금했다.

 

어린 시절이었다. 추수감사절 때였는데 부모님이랑 미군부대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기마병이 말을 타고 나타난 것을 처음 보았는데 그 충격이 대단했다. 멋스러워 보이는 기마병도 그랬지만 내 눈엔 온통 부리부리한 커다란 눈동자의 유연한 움직임의 말 모습이 각인됐다. 그 후 내가 작가로서의 길을 걸을 때 소재를 생각하다가 유년시절 그 말의 형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는 전통적인 사실주의 미학과는 엄연히 다른 길을 지향한다. 사실적인 묘사라는 점에서는 그 범주로 받아 들이 수 있지만 청회색조의 단색적인 색채이미지는 물론이거니와 추상적인 배경 등 일련의 조형적인 해석이 그러하다.

    



장동문 화백




작가는 내가 추구하는 세계는 말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본성 즉 야성을 시각화 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말의 생리적인 특성을 부각시키는데 의미를 두는데 앞으로 표의적인 것으로 더 심도 있는 깊이로 작업 하려한다. 요즈음 기학학적 기호와 말의 생동감 등을 현대적조형성으로 작업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장동문 작가는 홍익대 미술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2016한국구상대제전을 비롯하여 인도, 방글라데시, 프랑스, 미국 등 국내외 개인전을 33회 가졌다. 화실창문을 조금열자 깔깔한 저녁공기가 훅 밀려들었다. 커피 한 잔을 나누며 화가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가 흘렀다.

 

나의 작업 말은 묵묵히 제 길을 가는 희망을 상징하는데 살면서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달려가는 역동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냥 그림이라고 하는 것은 아름다운을 표현하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내가 살아가는 과정의 모습을 반영하는 작업이다. 산다는 것이 아름다움만이 있는 것이 아니듯 지나온 과정에서 순간순간 흘러가는 파편들을 내가 펼칠 수 있는 회화로 풀어 가는데 있어서 나름 스스로 진솔하게 살았다 생각이 들면 그것도 괜찮은 것 아닌가한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6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