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임하 자화상(Imha Selfportrait), 44.5×38㎝, Acrylic on canvas, 2014~2015 △(우)53×45.5㎝
“몸은 이미 노을 진 하늘 끝에 들어 있고 마음은 삼산(三山)의 그윽한 고을에 있네/따르던 사람들 보고 무엇을 보았더냐 물으니 중천에 반쯤 걸린 달뿐이었다 하네/아! 부귀영화의 흔적 없음이여 이름 하나 제대로 지키기도 어려운 일/고개지 솜씨 빌려 그려냈고 용의 골수 물들여 아득히 펼쳐냈도다/비바람 홀연히 지나가니 지나온 자취 휩쓸어가도다” <사라진 몽유도원도를 찾아서 中 이현로 ‘몽유도원도’ 찬시 부(賦), 김경임 지음, 산처럼>
인왕산, 91×116.7㎝ Acrylic on canvas, 2016
야망에 찬 젊은 나이에 정치권력이라는 회오리 속 형에게 희생된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비극적 행로만큼이나 그가 안견에게 그리게 한 서화(書畫)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일본 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꿈결에 보았던 것을 그림으로 남긴 이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아직도 여전히 덜 풀린 미완의 보배로움으로 우리 곁에 있지 못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 저 깊은 곳 회환의 심정이 후끈 달아오른다.
화면의 검정과 진녹색이 산의 맥(脈)을 껴안으며 지나가는 힘찬 필획의 질감과 봉오리 너머 펼쳐놓은 화이트 톤의 안도감이 이끄는 개방성 그리고 밤이면 호수위에 반짝이는 등불처럼 저쪽 산자락 아래 민초들의 키 작은 집들이모여 있는 정경….
암산(岩山)에 만발한 진달래, 숲과 계곡의 누정(樓亭), 무심히 지나가는 추야장 기나긴 침묵의 시간 속 절박함과 격렬한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후의 어떤 공허감을 마주하게 된다. 오랫동안 단종, 세조, 안평대군 등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역사화작업과 연동되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지만 동시에 그 풍경이 열어 놓은 함축적인 스펙트럼의 지평 안에, 지금 살고 있는 시대와 연관되어 있는 ‘나’를 찾는 발걸음이기도 하다.
경복고와 대학시절, 겸재 정선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의 안개와 비에 젖은 암벽의 대담한 필치에 특히 매료되었었다는 서 화백은 “그러나 이 작업은 하나의 미술사적 관심에 초점을 두었다기보다 안평대군의 저택이 있었던 산과 중인문화예술인들이 살았던 서촌 그리고 오늘날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역사와 자연이 공존하는 휴식공간으로서의 인왕산책길 등 인간의 존재와 사회 나아가 역사에 대한 통찰을 담아내는 심미관(審美觀)작업”이라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치밀한 구조와 불안정한 사선과 공격성마저 들게 하는 투박한 터치 그리고 붉은 빛깔의 볼과 부리부리한 눈동자 등 강렬한 원색을 띠는 표현주의적자화상 역시 인왕산 작업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과 표현의 중요성을 지향하는 작가의 화풍과 다름 아니다.
◇용해, 융합장르로서의 풍경화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길을 따라 올라가니 가로수들도 분주히 만추의 때를 준비하는 듯 했다. 누크갤러리는 계단을 꽤 오르고서야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뒤쪽으로 언덕을 넘으면 예로부터 정치가들이 많이 살던 곳인 가회동이다.
갤러리는 자그마한 테라스를 마련하여 건너편 인왕산 자락의 조망을 절묘하게 품고 있었다. 그곳에서 화백과 인터뷰했다. “인왕산을 구체적으로 그리기 시작한지 5년여 쯤 된다. 처음에는 수성동계곡 등지의 주변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는데 산 내부라서 전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갤러리를 오가며 바라본 산이 내가 찾던 관점과 잘 맞아 떨어지는 지점 중 하나였다”라고 했다.
서용선 화백
그렇게 진행된 이번 ‘서용선의 인왕산’초대전은 북촌로 누크갤러리에서 10월6부터 11월5일까지 열린다. 서용선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년간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14년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국내를 비롯해 미국, 독일, 일본, 중국 등을 여행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화백에게 현대미술흐름과 풍경화의 관계성에 대한 고견을 물어 보았다. “서양의 풍경화라는 장르가 소외되거나 잊어지는 흐름에 가까운데 아시아 사람들이 갖는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상충되는 지점이 있다. 그런 문제를 용해하고 융합시킬 수 있는 매개 장르로 풍경화를 면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우리의 산수화도 이러한 시각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진단했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2016년 10월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