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지면기사

〔화가 이정연〕신창세기,Re-Genesis(사디,sadi,이정연 작가,E. L. Pound,RHEE JEONG YOEN)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16. 10. 29. 01:13


신창세기(Re-Genesis), 259×194삼베 위에 옻칠과 자개, 칠가루, 숯가루, 2006




나무가 내 손으로 들어오니, 수액이 내 팔로 올라왔네. 나무가 내 가슴 속에서 아래를 향해 자라니, 가지들이 나에게서 뻗어 나오네, 두 팔처럼. 너는 나무, 너는 이끼, 바람이 그 위를 스쳐가는 오랑캐꽃들. 너는. 너는 어린이-그렇게도 키가 큰-세상 사람들에겐 이 모든 것들이 어리석어 보이겠지만.”<파운드(E. L. Pound) , 소녀, 정규웅 옮김, 민음사>




()=162×130㎝ △()=72.7×91




대나무 통을 재료로 한, 세 개의 원()은 성부-성자-성신 삼위일체와 천--인 조화를 표현하고 있다. 옆으로 뻗어가는 땅속줄기의 영양분에 충실하여 마침내 곧게 자라는 생장속성을 비유하듯 하단의 직선으로 깔린 것 역시, ()이다. 그 속엔 우주의 신비로움에 휩싸인 블랙홀처럼 아득한 시간의 비밀을 찾아 먼 여행을 떠나며 낭랑한 소리의 빛깔을 내는 원들이 춤추듯 회전하며 초월성을 암시한다.

 

작가는 조물주의 심령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속이 빈 대나무 통은 우주의 오묘하고 웅장한 소리를 인간내면에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묘사했다. 가령 변함없는 사랑과 생명, 순수한 내면의 음성 그리고 빈 마음이라했다.

 

화면바탕인 삼베는 태어남과 돌아감을 품은 광막하고 엄숙한 대지다. 삶을 되돌아보며 성찰하는 그 위에 상처에서 나오는 수액인 옻, 한옥토담의 정감을 자아내는 황토를 얹는다. 또 진주조개는 마치 태생적 아픔을 승화시키듯 아득한 시간동안 지구에 살아 온 우아한 빛깔의 영성(靈性)을 내뿜는다.

 

자개의 오색영롱함은 영혼의 빛나는 생령처럼 인생의 은밀한 성숙함과 연결되어 사방에 다다른다. 비움 속 피어나는 영원한 생명과 창조성으로 집약되는 신창세기(Re-Genesis)작품세계는 작가의 신앙심과 연결되어 있다. 곧 신이 준 축복받은 최초의 형상 그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정연 작가




꾸미지 않는 투박하고 거친 미감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소재, 디자인 인재들이 꿈과 열정을 키워 나가는 사디(sadi, samsung art and design institute)인근 한 카페서 수년 만에 작가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직관적인 작업을 하는 화가다. 에스키스나 또 삼베, 캔버스 등에 밑 작업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구상한다. 망치면 끝이지만 또 그것이 완성이 된다.

 

대작(大作)도 빨리 끝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소품이라도 오래 걸릴 때가 있는데 마음과 직관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에 대해 나는 별로 불만이 없다. 감정을 맑게 유지한 상태에서 몰입한 후 이미지가 떠오르는 대로 나간다. 때문에 작업시간에 대해서 구애받지 않는다. 안 풀리면 그대로 두었다가 나중에 보아서 다시 떠오르면 그때 작업하여 완성 한다라고 밝혔다.

 

이정연 작가는 이화여중·고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을 수료했다. 1983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프랫대학원에서 판화와 회화로 미술석사학위(MFA)를 받았다. 이후 콜롬비아교육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는데 유화와 아크릴, 판화, 사진, 세라믹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유학가기 전, 한지 위 비구상 동양화작업으로 국전(國展)에 두 번 입선했다. 1993년 귀국하여 다시 한국적인 작업을 추구했었는데 2000년도 즈음 화면에 부조형식이 나타난다. 그리고 점점 진화하여 삼베 위 옻칠과 황토작업 등으로 전환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삼성 아트 앤 디자인 인스티튜트(SADI) 부학장으로 기초학과에서 드로잉을 지도하고 있다. 작가에게 작법의 지향성에 대해 물어보았다. “형식에 너무 구애받지 않고 거칠지만 꾸미지 않는 투박함을 내뿜는 그런 미감을 추구하려한다. 아가의 울음소리같이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고 싶다. 살다보니 자연의 생명력들이 생생하게 들려온다. 그 속에 빨려들어 심취하게 되고 색채도 그렇게 아름답게 밀려오지 않나 싶다. 이렇게 찬연한 지상에서 산다는 것에 늘 감사하게 된다.”

    

 

권동철 미술전문기자/주간한국 201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