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풍경=산수화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세속을 잊게 하는 한가로움을 얻고 있다. 그래서 그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얽힌 속진을 씻어내는데 부족하지 않다. 남화 산수의 맛과 멋이란 바로 그런 데 있는 것이리라.
예부터 시(詩)·서(書)·화(畵)에 고루 능한 사람을 가리켜 3절(絶)이라 했다. 이는 문인 사대부의 필수적인 덕목이었던 까닭이다. 소천(小天) 김천두(金千斗·81)옹은 우리 시대 몇 안 되는 3절(絶)을 두루 겸비한 문인화가로 꼽힌다. 서울 성수동 대나무 숲 우거진 뜰에서 함께한 차 한 잔의 대화는 거목의 간결하고도 우아한 예술세계와 만날 수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명쾌한 언어로 전하는 그의 예술관을 들어보았다.
김천두 옹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눈빛이 정갈했다. 평소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자기관리에 철저한 그는 요즈음도 작업에 정열적이었다.
평생 화백의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소회를 묻자 “아마도 크게는 운명이라고 해야 것제. 끊임없이 정진해야하겠지만 그러나 뒤돌아보면 고향 장흥의 산수와 그 지역의 당대 유명한 스승들이 많으셔서 배움의 길을 갈 수 있는 환경으로는 더 이상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매일 일찍 일어나 글을 읽었으며 먹물을 한 대야 갈아 놓고 먹물이 떨어질 때까지 지칠 줄 모르고 글씨를 썼어. 나의 글씨가 단정하고 힘이 있으며 부드러운 가운데 필과 획이 자연스럽게 운영된다는 평의 기초는 그 때 다져진 것”이라고 말했다.
△매화=정월 달 매화, 섣달 뜰에 있는 매화 가지는 희고 깨끗하며 맑은 향기는 눈 내린 뒤에 더욱 아름답다.
그의 작품은 산수문인화를 막론하고 어김없이 화제를 담는다. 화제는 고시(古詩)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작시도 적지 않다. 시를 읽다가 화흥(畵興)을 일으켜 화필을 잡는 일도 있거니와 그림을 그리다가 시작(詩作)에 이끌리는 일도 있어서 시와 그림을 동시적으로 행하고 있는 셈이다.
김천두 옹은 “동양화는 고상해야 제 멋”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상한 그림은 손으로 그린 것 같지만 그 사람의 마음이 그려져야 고상한 그림이 나오는 것”이라며 “나의 산수화에서 전체적인 인상이 견고함에도 불구하고 필선은 그렇게 무심하다.”고 말했다.
신항섭 미술평론가는 그의 산수화를 두고 “산과 물과 나무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지는 전형적인 남화풍의 소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그의 산수에서 특이한 필법을 발견할 수 있다. 형태가 명확해서 전체적인 인상이 선명하다. 필치에 힘을 실음으로써 형태를 명확히 찾아들어간 데 연유한다.”고 평론했다.
박용숙 미술평론가는 “소천의 화법에서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필선이다. 그는 글씨를 쓰듯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가장 개성적인 산수화가라고도 말할 수 있다. 지극히 작은 글씨의 조각들이 한 덩어리를 이루어 그림이 되고 있다. 덩어리를 깨면 글씨의 파편이고, 그 파편들을 모으면 그림이 된다. 그러나 그 글씨의 파편들이 지극히 생동적이어서 매우 박진감 있는 세계를 만나게 된다.”고 평했다.
그는 후학들에게 “한국화가가 되려고 한다면 그림의 기교에만 빠지지 말고 만권(萬卷)의 시, 서를 읽어 먼저 학자가 되어야 한다. 유· 불교의 깊은 사상과 철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고상한 그림은 안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천두 옹은 끝으로 “기교만 부리는 속 된 그림은 가치가 없다. 앞으로 더욱 정진해 기교를 안 부리는 무덤덤한 그림, 그러한 고상한 그림을 남기고 싶다”며 작업실로 총총히 들어갔다.
△스포츠월드 2008년 8월29일 김태수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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