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 6

[권동철의 화가탐방]서양화가 이태현③‥한국청년작가연립전(1967년)-‘명(命)1’,‘명(命)2’[네오다다(Neo-Dada),이승조,Lee Tae Hyun,이태현 작가,이태현 화백,이태현 미술가]

“파리 앵포르멜 열풍이 불고 몇 년 지났을 때였다. 앵포르멜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후의 사조였고, 나도 실제로 6.25한국전쟁을 봤기 때문에 앵포르멜에 빠져 들어갔다. 대학에서 기본실기를 충실히 하고 방과 후 추상표현주의 등 실험을 많이 했었다. 나는 1963년 홍익대 미대를 졸업 한 후 군에 입대했다. 66년에 제대를 하고 보니 앵포르멜이 쇠퇴기에 들어갔다. 나는 ‘무동인’, ‘한국청년작가연립전’으로 들어갔다. 당시 군대에서 제대 한지 오래지 않았기 때문에 ‘군과 나’, ‘나와 사회’에 대한 네오다다(Neo-Dada) 예술과 사회에 대한 고뇌를 하고 있었다. 그 때 무동인 2회전(展)이 열린 중앙공보관(1967년, 6월)에서 발표한 작품이 ‘명(命)1’, ‘명(命)2’이다. 그해 1..

[미술서평] ‘비평가 이일과 1970년대 AG그룹’ 발간

지난해 2023년 5월10~6월24일까지 ‘갤러리 스페이스21’에서 열린 ‘비평가 이일과 1970년대 AG 그룹’전시의 일환으로 동명(同名)의 도서가 발간됐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인 1970년대 젊은 평론가와 작가들이 열정적으로 미술운동을 해 나갔던 시대를 관통한다. 책의 구성은 △1960~90년대 한국미술계에 미술비평(미술평론)개념을 인식시키고 한국현대미술의 방향성에 초석을 다진 미술비평가 이일(Lee Yil,李逸,1932~1997)의 6편(篇) 글모음 △오광수, 서승원, 심문섭, 이강소, 최명영, 김구림 등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그룹 작가인터뷰 △정연심 에세이 ‘AG(Avant-Garde)그룹의 실험미술 전시’ 등이다. ‘갤러리 스페이스21’ 이유진(유족, 딸)대표는 ‘비평가 이일과 1970..

조각가 박석원‥자연과 인공 동·서양 융합의 현상학

“만물들은 서로 의존하는 데에서 그 존재와 본성을 얻는 것이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1)” 한국현대기하추상조각 선구자 박석원(1942~)작가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4.19혁명을 거쳐 온 세대다.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69), 한국현대조각회창립멤버(69)로서 70년대 한국미술전환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인위와 자연성의 조화로운 융합사유의 행보를 보인다. 조각과 한지평면작품 전시공간은 정결한 느낌의 아우라를 자아낸다. 박석원 예술의 주요매체인 돌, 나무, 한지, 흙, 철 등 유·무기체를 아우르는 매우 본질적이며 유동적 재료들의 관계성을 통해 생명세계의 충일과 확장을 보여준다. 작품들엔 사물의 최소공간에 오브제를 현시(顯示)함으로써 본질을 더욱 명확하게 부각시키는, 그럼으로써 ..

서양화가 이태현‥생성과 소멸 불멸의 기하학[李泰鉉,Lee Tae Hyun,이태현 작가,이태현 화백,이태현 미술가]

“모든 종소리 잠들었다가 어느 날 꽃으로 피어서……1)” 영원을 품은 하루가 환희처럼 동트고 있네. 부드러운 첼로선율 같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만곡(彎曲)의 물살이 여명을 껴안는 시각. 마침내 물과 불이 하나 되는 매혹의 공간감, 충만한 겹꽃으로 피어나는 저 부용이 장엄한 화엄(華嚴)을 맹렬히 감싼다. 아 바람 속으로 들어가 바람이 되고 스스로 꽃이 되는 운율이 역동의 기운으로 번진다. 빼곡했던 은하가 자리를 비워준 새벽녘하늘. 저 허(虛)의 공간으로 새 한 마리 높이 날아가누나! “고요함, 그것을 경배하라. 그는 그것으로 와서, 그것으로 돌아갈지니, 그 속에서 숨을 쉬고 있으므로.2)” ◇가없는 빛살과 어둠의 행익 작업은 바탕을 단일하게 만들고 테이프로 완만한 선을 만드는 방법론을 구사한다. 한옥지붕의 ..

[인터뷰]서양화가 이태현‥“나는 다시 태어나도 정신계의 미학에 천착할 것”[李泰鉉,Lee Tae Hyun,이태현 화백,이태현 작가]

“1970년대 중반 동대문상고 미술교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 학교미술실에서 실험 작품을 하다가 탄생된 것이 현수곡선 작업이다. 처음엔 주역의 괘(卦)를 통해 무량무변(無量無邊)을 함축한 삼라만상을 표출하다가 중간에 좀 더 구체적으로 우주현상을 해내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탄생됐다. 그러다보니 색채가 흑백이 많았고 그 중에서도 흑색작품이 많이 나왔다. 일부 흰색에서 어두운 색으로 변모되는 것을 시도했었지만 역시 흑색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새해연초 경기광주 이태현 작가 작업실을 찾았다. “지금 돌아보면 일생에서 중요한 시기였다. 40대 좋은 나이에 연구한 결실이라 여긴다.”라고 덧붙였다. 이태현(李泰鉉,1940~)미술가는 홍익대학교 회화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했으며 청주 서원대학교 교수를 역임했..

[권동철의 화가탐방]서양화가 이태현②‥무(無)동인:1962년 국립도서관화랑[Lee Tae Hyun,이태현 작가,이태현 화백,이태현 미술가,김영남,김영자,김상령,문복철,석란희,최붕현,황일지,설영조]

“1960~62년까지 초기구상작품은 나의 홍익대 3~4학년 재학시절이다. 이 시기 초기 구상작품은 조형의 기본을 터득하기 위해서 굉장히 열심히 노력했던 때의 결실이다. 오직 조형적인 형태, 색채 등의 요소를 가지고 인물을 터득하는데 일심이었다.1)” ◇무동인(無同人) “이태현(李泰鉉)씨가 작가로서 등단한 것은 62년에 창립된 바 있는 무동인(無同人)에서이다. 당시 무동인(無同人)은 아직도 재학 중인 젊은 화학생(畵學生)들로 구성되었으며, 대체로 60년대 초반의 뜨거운 추상운동(抽象運動)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출발한 그룹이다. 이태현씨의 작가적 형성도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무동인(無同人)은 대부분이 재학생이었던 관계로 창립전(展)을 치르고 난 후, 졸업과 더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