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조각가 박석원‥자연과 인공 동·서양 융합의 현상학

권동철 Kwon Dong Chul 權銅哲 クォン·ドンチョル 2024. 2. 11. 17:44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조각가 박석원. 사진=권동철.

 

 

“만물들은 서로 의존하는 데에서 그 존재와 본성을 얻는 것이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1)

 

한국현대기하추상조각 선구자 박석원(1942~)작가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4.19혁명을 거쳐 온 세대다.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69), 한국현대조각회창립멤버(69)로서 70년대 한국미술전환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인위와 자연성의 조화로운 융합사유의 행보를 보인다.

 

조각과 한지평면작품 전시공간은 정결한 느낌의 아우라를 자아낸다. 박석원 예술의 주요매체인 돌, 나무, 한지, 흙, 철 등 유·무기체를 아우르는 매우 본질적이며 유동적 재료들의 관계성을 통해 생명세계의 충일과 확장을 보여준다.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작품들엔 사물의 최소공간에 오브제를 현시(顯示)함으로써 본질을 더욱 명확하게 부각시키는, 그럼으로써 박석원 예술의 동·서양 융합의 환원세계라는 단일성을 모색하는 방법론을 취한다.

 

인공과 자연성의 융화를 통한 회귀지점에 작가의 본질적인 직관이 스며있다. 그것은 궁극의 사물다움, 미니멀(Minimal)한 모습으로의 거듭 태어남이다. 동시에 존재의 심층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어떤 운동의 이치가 본질로의 관계성을 찾아가도록 수행도량을 담보해 내는 경지의 상태에 진입했음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럼으로써 삼라만상 생성과 소멸의 인과율 그 비유비공(非有非空)이 선사하는 순수정신성의 발자취는 관람자에게 자아와 사물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고양시킨다.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전시장의 입체와 평면작업이 경계를 허문 채 물 흐르듯 서로를 받쳐주고 때로는 먼발치서 조용히 응시하며 서로의 존재를 빛나게 하는 시방(十方)의 세계관 앞에서 쉽게 발길을 떼지 못했다. 취재하는 내내 세월의 깊이와 미묘한 우수가 배어나는 작곡가 한스 짐머 ‘Tennessee’선율이 공간감으로 작품들과 소통을 이끌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이번 박석원 예술여정을 한 공간에서 입체적으로 시각화한 디스플레이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그만큼 이 전시디피는 백미(白眉)로 기록될 것이다.

 

“어떤 하나가 혼연일체로 형성되어 천지에 앞서 이미 존재하였다. 고요하도다! 비었도다! 그것은 홀로 존재하여 불변하였고, 순환불식 운행하여 능히 천하의 모체였다.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廖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2)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분절구조와 평면 직관의 몸짓과 호흡

박석원 조각의 특징인 자연석 등 단단한 물질의 절단된 틈새에 개입되는 적(積), 적의(積意)시리즈의 분절구조에서 한지의 원초성을 오브제로 운용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이후 1982~83년 연속 진행한 ‘현대종이의 조형-한국과 일본(국립현대미술관·서울, 일본 동경시미술관, 구마모토전통공예관)’, 1984년 관훈미술관 ‘종이작업’전 등에 출품참여하기도 했다. 작가는 “당시부터 한민족의 전통재료인 한지를 내 작업 속에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라고 토로했다.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박석원 평면은 한지라는 오브재가 캔버스평면과 접합되는 입체적 양식을 취한다. 붙이는 행위에서 선이 드러난다든지, 쌓아가는 형태에서 공간과 소재관계가 창출되는 종이특성(촉각성을 포함하는)의 물질감이 두드러진다. 곧 입체화 된 평면, 평면화 된 입체인데 바로 질료의 확산과 환원이라는 새로운 가치창조의 독창성과 맞물리는 지점이다.

 

“내 작업의 본질 중 하나가 분할이다. 무의식의 행위를 통해 분할, 분절, 특수한 소재를 갈라놓는다. 실상 물성이 분화되면서 외부공간으로 번져나가는 과정의 구조특성을 보여주지만 본질은 나의 신체행동을 통해서 나타나는 분화된 사물의 전개라는 점이다. 이것이 내 작업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다.3)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박석원 화백 작업실을 다수 방문하면서 생생한 문제의식과 열정을 가까이서 지켜 본 필자로서, 가장 한국적인 정신성의 호흡이 투시된 직관의 몸짓이 작업에서 배어나오는 것을 목도했다. 자연과 인위의 하모니를 구현하며 통유성(通有性)을 찾아가는 천인합일의 오리엔탈리즘 그 근원엔 노(老) 화백의 고독하면서도 불꽃같은 예술혼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나의 지각에서 물체, 나 자신의 실제이거나 가능한 경험에서 물체…그 물체는 자신의 원초성에서 스스로를 제시하는 나의–오직 나만의-나타남의 통일체로, 결국 나에게 실제이거나 가능하게 스스로를 제시하고 제시할 것에 따라 통일체로 존재한다.4)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十方, 생사윤회의 인상(印象)

박석원 작가론의 지향점은 만물이 맑디맑게 조화로운 정토(淨土)세계의 추구이다. 석탑, 돌 사이 링(Ring)작업, 내부의 경계를 허물고 영원성을 획득한 나무 등의 생사윤회는 한국정신의 계승과 복원에 현대성을 융합한 무량무변의 일체, 무아경(無我境)을 드러낸다.

 

이와 아울러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 유희삼매(遊戲三昧)의 자유로운 정신의 수행성을 가슴속에 품은 전체성(Holism)이 회우되는 저 화엄(華嚴)의 시방세계(十方世界)로 인도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우주현상흐름에 조응하는 법계연기가 아니던가!

 

“이 세상에 존재해 있는 일체의 것은 공(空)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전도(顚倒)되지도 않고, 동요하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고, 바뀌지도 않으며, 허공과 같아서 고유의 성질이 없고, 말로도 입으로도 설법할 수 없는 것이며, 생긴 것도 나온 것도 일어난 것도 아니고, 이름도 모습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으며, 한량없고 끝도 없으며, 걸림도 없고 막힘도 없으나, 다만 인연에 의해 존재해 있을 뿐이며, 판단의 전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라고 관조해야 한다.5)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한편 조각가 박석원(Park Suk Won) ‘비유비공(非有非空, re-and de-)’전시는 추상조각과 한지평면 총50여점으로 1월11일 오픈하여 2월24일까지 서울성수동 서울숲2길, ‘더페이지갤러리(The Page Gallery)’에서 성황리 전시 중이다.

 

[글=권동철, 2월9일 2024, 인사이트코리아]

 

[참고문헌]

1)고승(高僧) 용수(龍樹,나가르주나)가 약1천8백 년 전에 이렇게 말했다./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The Tao of Physics),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지음, 이성범·김용정 옮김, 범양사.

2)노자 도덕경, 소준섭 옮김, 현대지성.

3)박석원, 나의 평면과 무의식, 2024.

4)상호주관성,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 지음, 이종훈 옮김, 한길사.

5)법화경(法華經)-안락행품, 반야심경/금강경/법화경/유마경. 홍정식 역해, 동서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