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소리 잠들었다가 어느 날 꽃으로 피어서……1)”
영원을 품은 하루가 환희처럼 동트고 있네. 부드러운 첼로선율 같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만곡(彎曲)의 물살이 여명을 껴안는 시각. 마침내 물과 불이 하나 되는 매혹의 공간감, 충만한 겹꽃으로 피어나는 저 부용이 장엄한 화엄(華嚴)을 맹렬히 감싼다.
아 바람 속으로 들어가 바람이 되고 스스로 꽃이 되는 운율이 역동의 기운으로 번진다. 빼곡했던 은하가 자리를 비워준 새벽녘하늘. 저 허(虛)의 공간으로 새 한 마리 높이 날아가누나!
“고요함, 그것을 경배하라. 그는 그것으로 와서, 그것으로 돌아갈지니, 그 속에서 숨을 쉬고 있으므로.2)”
◇가없는 빛살과 어둠의 행익
작업은 바탕을 단일하게 만들고 테이프로 완만한 선을 만드는 방법론을 구사한다. 한옥지붕의 용마루나 한복소매, 휘어진 활의 선형을 통해 인과의 조화로움을 얻는 현수곡선의 조형성이 스며있다. 그 위에 색채변화를 준다. 그라데이션은 어두움에서 밝은 곳으로 이동하는 현상과 공명요소를 직관적으로 내비친다.
하여 무아정적(無我靜寂)의 세계와 조응하는 생명의 영혼으로 고취시키는 깊은 울림이 퍼져 나오는 것이다. “새벽이 오고 다시 낮이 그다음 어두워져 밤이 되는 우주 삼라만상의 존엄한 순환과 변화를 표출시키려 고심했었다. 막힘없이 풍성한 현수곡선에서 마침내 영감을 얻었다.3)”
화면은 자연의 무위에 순응하는 형상화의 밀도로 드러난다. 긴장감으로 덮인 시공의 운동성은 오묘하게 명상적 광경 속으로 인도하고 궁극의 일체, 범아일여(梵我一如)를 일깨우는 순수마음을 자아내게 한다.
광선의 반복현상, 수직접합곡선이 내뿜는 무아경의 불꽃같은 에너지는 생성과 소멸 그 불후의 진리를 변주하여 영원성에 대한 가없는 빛과 어둠의 행익(行益)으로 이끈다. 이는 지극히 동양적이며 불교적 우주관으로 주역의 괘(卦) 정신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도’라고 하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 고정 실체이다. 참으로 불분명하도다! 하지만 그 속에 오히려 형상이 있다. 참으로 흐릿하도다! 하지만 그 속에 실물이 있다. 참으로 깊고도 어둡도다! 하지만 그 속에 아주 미세한 본질이 있다. 道之爲物, 惟侊惟憁! 憁兮侊兮! 其中有象. 侊兮憁兮! 其中有物. 穿兮冥兮! 其中有精.4)”
[참고문헌]
1)화엄경, 고은 장편소설, 민음사
2)찬도그야 우파니샤드(Chandogya Upanishad)/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The Tao of Physics),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지음, 이성범·김용정 옮김, 범양사刊>
3)이태현 작가, 나의 작업과 현수곡선, 2024.
4)노자 도덕경, 소준섭 옮김, 현대지성.
[글=권동철, 2월호 2024, 인사이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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