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뉴타운 풍경-월곡동의 빛, 180×230㎝ digtal C-print, 2005
낮과 밤을 잇는 5시간여 긴 노출, 16층에서 8x10인치 대형 카메라에 포착된 작품들은 색채의 기록성과 고해상도의 강력하고 초월적인 대형 사진 이미지로 재현되었다.
비탈진 언덕배기 길, 다닥다닥 붙은 집들. 저 모퉁이 돌면 엄마 심부름 두부 사러갔던 야채상회, 전봇대 옆 담배 가게…. 불암산 매서운 눈보라, 연탄 몇 장 등에 지고 고등어 한 손을 든 채 올랐던 서울의 월곡동 골목길. 여명(黎明)이 졸고 있는 가로등 불빛 등짝을 어루만진다.
아늑하게 다가오는 노오란 새벽 풍경. 고단한 일상의 달콤한 휴식은 공평했다. 마을을 가로지르던 길은 여유롭고 넓기만 하다. 누구일까.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매달려 이 마을에 노랑 개나리, 튤립 같은 희망의 빛깔을 선물하고 싶었던 사람은. 그러나 아침은 어김없이 분주하다. 철거작업은 파괴가 전제되고 한낮엔 굉음이 자리했다.
이 도시에 청운의 꿈을 안고 첫발을 내디뎠던 한 젊은이는 초록 잎들이 무성한 계절 어느 날 스스로 혼돈의 시간을 정리하지 못한 채 이곳을 떠났다. 낡은 벽지 위에 남겨진 희미한 문장 하나가 먼지 속을 뒹군다. “진정한 도시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인간의 체취로 이루어져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에드워드 글레이저(Edward Glazer) 著, 도시의 승리>
서울, 뉴타운 풍경-월곡동의 사라지는 빛Ⅰ, 180×245㎝ digtal C-print, 2006
무질서하게 자란 잡초들, 오순도순 정담 나누던 밥상, 로봇태권브이에서 아기공룡 둘리에 이르기까지 눈치 보며 보았을 구형 아날로그TV…. 작가는 “이러한 엉켜 있는 일상의 파편들을 화면에 드러내 그들을 살아내게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비록 그것이 화면에서 한 점에 불과하지만 마치 오래된 유물을 발견하듯 나의 작업이 길면 길수록 관객들이 그 작품 앞에 서 있는 시간은 길어진다”고 말했다.
모두 다 떠나 폐허가 되어가는 마을. 사람이 떠나면 일상이 떠나고 그곳은 어느 순간 침묵의 공간으로 변한다. 바로 그 지점에 기억들은 피어오른다. 누추함 위 미드나잇 블루(Midnight Blue) 짙은 어둠이 점점 순화되어가며 드리우는 푸른빛은 소멸 직전 공간이 뿜어내는 교훈 하나를 건넨다. 곧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진정 아름다움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서울, 뉴타운 풍경-월곡동의 사라지는 빛Ⅱ, 180×237㎝ digtal C-print, 2007
“풍경 중에는 첫여름의 신록이 가장 아름답지만 거기에 시간의 더께가 쌓여 이야기와 의미가 생긴다. 시간의 환상이, 풍경이 감싼 아름다움을 알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극치가 폐허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끼는 경지일 것이다. 폐허는 오히려 생명의 싱그러움을 새로이 깨닫게 한다.”<김원 著, 건축은 예술인가> 보금자리에서 쫓겨나거나 다시 돌아올 수없는 공간. 그러나 그 기억의 망(網)에서 건져올린 것은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내재된 인간적 가치다. 바로 숨을 불어넣음으로써 거듭 태어나는 노랗고 푸르른 색채, 도시의 삶과 꿈이다.
△출처=글-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1년 8월11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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